그것은 한 해 동안 국민이 느낀 희로애락을 대표하고 상징한다.
27년 전인 1979년의 한국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동아일보 선정 10대 뉴스의 제목도 ‘충격의 1979’.
①박정희 대통령 서거·최규하 대통령 취임·긴급조치 9호 해제 ②12·12사태(훗날 ‘12·12쿠데타’라고 불린다) ③부산 계엄령·마산 위수령 선포(지금은 ‘부마항쟁’이라 칭한다) ④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⑤YH사건·경찰 신민당사 진입 등등.
기념비적 민주화운동인 ‘YWCA 위장 결혼식 사건’(1979년 11월 24일)이 10대 뉴스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해될 만하다.
‘홍성엽 군과 윤정민 양이 여러 어른과 친지를 모시고 혼례를 올리게 됨을 알려 드립니다.
즐거운 자리에 함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979년 11월 24일(토) 오후 5:30
※YWCA 1층 강당(명동성당 앞)’
명함 크기의 이 작은 청첩장 500장이 계엄당국의 눈을 피해 재야 민주 인사와 학생들에게 은밀히 배포됐다. 신랑은 민주청년협의회 상임위원이었지만, 신부(윤정민·尹貞敏)는 가공의 인물. ‘즐거운 자리’는 결혼식이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보궐선거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였다. 4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더는 ‘체육관 대통령’ ‘유신 대통령’을 용납할 수 없다며 “조속히 거국민주내각을 구성하라”고 외쳤다.
계엄사령부는 불법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140명을 연행 조사해 14명을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다음 해 1월 법정에 선 민주 인사들의 최후진술에는 ‘서울의 봄’ ‘민주화의 봄’에 대한 기대와 염원이 여전히 녹아 있었다.
“군(軍)은 국민의사를 반영하는, 진실로 국민을 위한 군이 되어 달라.”(홍성엽)
“(유신 독재 때는) 단지 유언비어로 징역 5년형을 받았다. 서울 중심가 한복판에서 감행된 이번 시위 가담에 징역 2년을 구형한 것에 감사한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 큰 일을 저질러도 전혀 처벌을 받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최민하)
“이런 훌륭한 젊은 애국자들에게 상은 줄 수 없을지언정 처벌을 해야 하겠소?”(윤보선)
몇 달 뒤 신군부의 군홧발은 이들의 처절한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피로 물든 비극의 10대 뉴스를 양산하면서….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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