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TV광고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세상도 그런가.
1957년 12월 5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영종 의원은 ‘그 친구’였다. 이날 민법의 동성동본 금혼 조항이 재석 의원 110명 중 찬성 90표(81.8%)로 가결됐다. 거수(擧手)표결을 했는데 아무도 반대 안에 손을 들지 못했다.
분위기가 그랬다. 찬성 의견을 편 한 의원은 “우리나라가 민족적으로 자랑할 것은 동성동본 혼인을 금지하는 것과 조상 숭배하는 것, 단 두 가지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표결 절차는 찬반 토론도 생략한 채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박 의원이 “이건 아니다”며 강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 역시 동성동본 결혼을 찬성하는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민법 조항 중 최대 논란인 이 문제를 충분한 토론과 대(對)국민 설명 없이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동성동본 문제로 왈가왈부하는데 우생학적으로 어떤 이유인지 아십니까? 근친결혼을 막는 것은 왜 부계(父系)에만 집중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대답 좀 해 봐요, 자세히. 이런 문제들을 덮어 놓고 동성동본이니까 무조건 찬성, 반대한다는 것은 무지(無知)의 행동이에요.”
그의 이런 ‘아니오’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가 항의 발언을 하려고 여러 차례 등단하자 의사 진행을 맡은 국회부의장은 “시간 절약하다가 (당신 때문에) 시간이 더 가 버렸다”고 조소했다. 일부 의원은 “박 의원! 그만 내려와!”라고 소리쳤다.
결국 찬반토론 없이 가결.
▽박 의원=분명 다른 안을 지지했던 분들이 계실 건데 어찌해서 한 사람의 손도 안 올라옵니까. 이건 문제예요. 무기명 비밀투표를 해야 정확한 표가 나오지. 자기 선거구 염려하고, 당선 여부를 염려해서 투표한 것 아닙니까. 이 표결은 무효로 돌려야 합니다.(장내 소란)
▽부의장=박 의원이 (직접) 국회법을 만들기 전에는 무효로 선포 못 합니다.
무효 선포는 40년 뒤(1997년) 헌법재판소에서 나왔다. 문제의 조항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에 배치된다는 결정이다.
1957년 국회가 박 의원의 ‘아니오’에 좀 더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세상이 ‘아니오’라고 하는 바람에 숨죽여 ‘예’라고 해야 했던 동성동본 부부들의 고통을 좀 더 일찍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