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 어렵사리 들어온 경기장에서 어머니는 캠코더로 아들의 모습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시아 신기록인 줄도 몰랐다. 아들이 요구한 위치와 각도에서 촬영에 집중하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나름대로의 방편이었다.
4일 카타르 도하 하마드 아쿠아틱센터에서 아들 박태환(17·경기고 2·사진)의 자유형 200m 결선 경기 모습을 찍던 어머니 윤성미(49) 씨는 시상대에 박태환이 나타나자 “아들 좀 보자”를 연발했다. 정말 어렵게 보는 아들이었다. 박태환의 온 가족은 이번에 처음으로 외국 응원을 나왔다.
○만나지는 못하고 손짓-눈짓만으로…
한국에서 깻잎과 김치 등 온갖 밑반찬을 싸 가지고 20여 시간을 날아 2일 현지에 도착했지만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손짓 눈짓만 하고 있다.
수영선수단의 규율이 엄격해 개인 만남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 전화도 제한된 시간에만 할 수 있다. 누나 인미(24) 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내 놓으면 박태환이 이를 확인하고 전화가 가능한 시간에 한두 마디 통화한다. 아시아 신기록으로 우승한 직후에도 가족은 서로 먼발치에서 손짓으로만 인사했다. 그래도 기어이 객석에서 가족을 찾아낸 박태환은 그쪽으로 자주 손을 흔들고 꽃을 던졌다. 이날 밤 늦은 통화에서 어머니는 “밥은 잘 먹고 있니? 축하한다” 등의 간단한 통화만 했다.
그런데 박태환의 가족은 박태환의 남은 경기를 못 보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표가 매진됐기 때문이다. 이날도 현장 판매직원들에게 애원하다시피 하던 중에 한국인 관계자를 만나 사정 이야기를 했고 겨우 표를 구해 입장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자주 기쁨의 눈물을 글썽였다. 박태환이 던져 준 꽃을 든 누나는 환하게 웃었다. 박태환은 이날 입장할 때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입장했다. 평소 빼곡하게 곡목을 적어 부탁하는 박태환을 위해 누나는 그동안 수천 곡을 녹음해 주었다.
박태환의 발에 박인 수많은 티눈을 면도칼로 긁어 주며 아들을 응원해 온 아버지 박인호(56) 씨는 “아테네 올림픽 때 가족들이 응원 가지 않은 것은 큰 실수였다”며 미안해했다.
박태환은 400m, 1500m 우승이 유력해 3관왕을 바라보고 있으며 컨디션에 따라 100m까지 포함하는 4관왕에 도전할 예정이다.
도하=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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