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마오(16), 안도 미키(17) 등 우승 후보로 꼽혔던 일본의 피겨 스타들은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프리스케이팅 연기 중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졌다.
이를 두고 “김연아에게 운이 따랐다”고 말한다면 천만의 말씀.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며 실수 없이 연기를 펼쳐야 하는 피겨는 흔히 ‘정신적 게임’으로 분류된다. 한 번의 실수가 몇 년 공들여 쌓은 고난도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김연아의 우승은 그가 기량뿐만 아니라 ‘실수 매니지먼트(실수 관리)’에서도 세계 최고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로부터 피겨는 큰 무대에서 실수를 최소화하는 선수가 정상에 섰다. 2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에서 금메달은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는 러시아의 이리나 슬루츠카야와 미국의 사샤 코헨에게 맞춰졌다. 하지만 둘은 우승에 대한 부담감에 실수를 연발했고 금메달은 일본의 노장 시즈카 아라카와에게 돌아갔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자국 피겨 선수 세라 휴스의 코치인 로빈 와그너의 말을 인용해 “피겨에서 평정심은 경기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고 보도했다. 선수들은 큰 경기를 앞두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갖기 위해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거절하고 시골에서 연습을 할 정도다.
김연아는 강한 정신력을 타고났다. 어머니 박미희(47) 씨는 “연아는 강한 상대를 만날수록 강해지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김연아는 특히 큰 무대에서 초인적인 연기를 펼친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진통제를 맞아야 할 정도의 허리 통증과 부츠가 빨리 닳아 서로 짝이 맞지 않는 피겨화를 신는 등 최악의 여건 속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쳤다.
지난달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우승할 때 썼던 ‘작전’을 그대로 구사한 것도 성공적이었다. 4분이 넘는 연기를 펼쳐야 하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경기 후반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체력 소모가 큰 고난도 기술을 연기 초반에 집중시키고 후반에는 가벼운 기술로 배치한 것.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가 출전자 6명 중 3위를 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됐다. 프리스케이팅에선 전날 순위의 역순으로 연기를 펼치는데 쇼트프로그램 1위 아사다, 2위 스구리 후미에(일본)에 앞서 김연아가 무결점 연기를 펼친 것이 이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효과를 줬기 때문.
보름 전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역대 최고 점수인 199.52점을 받았던 아사다는 이날 트리플 악셀(3바퀴 반 회전)을 구사하다 엉덩방아를 찧은 뒤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다.
이제 김연아는 세계 챔피언이라는 새로운 부담을 안고 경기에 나서야 한다. 진정한 ‘실수 매니지먼트’는 이제부터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김연아의 주특기는
트리플-트리플… 변형 카멜스핀…
161cm의 작은 키에 16세 소녀 김연아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장기를 끊임없이 갈고닦았기 때문. 김연아의 주특기는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과 변형 ‘카멜 스핀’.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이란 말 그대로 점프해서 3회전하는 동작을 2번 연속으로 하는 것. 한 번의 3회전 점프는 많은 선수가 구사하지만 연속 3회전 점프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명 내외만이 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다. 점프 동작의 콤비네이션은 첫 점프 뒤 착지한 발로 반드시 두 번째 점프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김연아의 라이벌 안도 미키가 ‘쿼드러플 점프(공중 4회전 점프)’를, 아사다 마오(이상 일본)가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 점프)’을 구사하지만 김연아는 난이도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연속 3회전 점프로 대적하고 있다.
카멜 스핀은 상체를 구부리고 한쪽 다리를 펴서 몸을 ‘T’자로 만들어 제자리에서 도는 동작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 동작을 발전시켜 처음엔 기본 동작을 하다가 상체를 틀며 들어올린 다리를 구부리며 돌고, 다음엔 다리를 뒤로 뻗어 한손으로 잡고 마무리하는 변형 카멜 스핀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낸다. 유연성과 균형 감각이 탁월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기술이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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