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간간이 비치던 2일 오후. 유럽 대륙을 종단 중인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41) 씨가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를 매단 휠체어를 몰고 에펠탑 광장에 도착했다. 빗속에 힘들게 도착했지만 최 씨의 표정은 밝았다. 두 국기 사이에는 ‘한반도 통일을 위하여’라는 글이 새겨진 깃발이 나부꼈다.
“저 같은 중증 장애인도 통일을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최 씨는 입으로 조종간을 물어 전동 휠체어를 움직인다. 지난해 5월 10일 그리스에서 출발해 시속 15km도 안 되는 느린 속도로 움직이지만 프랑스가 벌써 21번째 방문 국가다.
긴 여정 동안 가슴 북받치는 순간도 많았다. 최 씨는 “프랑스에선 성탄 전야에 거리에서 만난 노부부의 집에서 묵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 부부는 “당신이 우리 집에 와 주면 큰 영광이 될 것”이라는 말로 최 씨를 초대했다고 한다. 폴란드에선 한 남성이 무릎을 꿇고 최 씨의 발에 입맞춤을 했고 어느 국경에선 한 노동자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최 씨에게 건넸다.
이날 에펠탑 광장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관심을 보였다. 그리스에서 온 나폴레온 베파다이키스 씨는 최 씨와 사진을 찍은 뒤 “놀랍고 감동적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파리에서 며칠 머문 뒤 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독일 베를린 장벽에서 장도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동행 중인 자원봉사자 최재혁(22), 이선영(24) 씨와 함께 곧잘 앉은 채 자야 하는 강행군인 데다 경제적으로도 여의치 않지만 그는 “더 많은 세계인에게 통일의 염원을 보여 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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