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마음 키워주는 엄마됐죠”

  • 입력 2007년 1월 30일 03시 00분


29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송죽원에서 윤기향 씨가 김아름 양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신수정 기자
29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송죽원에서 윤기향 씨가 김아름 양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신수정 기자
복지시설 아이들에게 책읽어주기 5년 윤기향씨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송죽원은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가정의 여자 아이들이 모여 사는 보육원이다.

29일 오후 5시경 이곳에 ‘책 읽어주는 엄마’ 윤기향(56·여) 씨가 찾아왔다. 그는 아이 네 명과 오순도순 모여 앉아 동화 ‘첫눈 오는 날의 약속’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곧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윤 씨는 매주 한 차례씩 이곳을 찾고 있다. 2002년 아이들이 1학년일 때부터 6년째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게 됐다. 그는 처음엔 아이들에게 ‘교사’였지만 이젠 ‘엄마’가 됐다.

“5년 전 마음을 잘 열지 않고 냉담한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했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속이 상하는 건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욕심’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욕심을 버리니 아이들도 마음을 열었죠.”

‘책 읽어주는 엄마’와 5년을 함께 보낸 김아름(12) 양은 “이전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이제 책을 읽게 되고 1주일에 한 번 ‘엄마’를 만나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윤 씨는 아이들과 자주 현장학습을 나간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바깥 외출 기회가 적은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생생한 현장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역시 송죽원에서 독서봉사를 하는 이순자(51·여) 씨는 “체험활동을 가는데 아이들이 내 뒤에 숨어서 가더군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가슴이 아려 온 이 씨는 이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데만 그치지 않고 따뜻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생의 멘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의 ‘한우리독서봉사단’이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 소외된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1996년 만든 봉사단체다.

현재 150여 명이 전국 보육원 11곳, 복지관 6곳, 소년원 1곳, 재활원 2곳, 청소년 쉼터 2곳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회원 가운데 평생 봉사를 서약한 사람도 42명이나 된다. 이들은 아이들이 철새처럼 왔다 떠나는 봉사자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는 말에 주저 없이 서약을 했다.

한우리봉사단은 최근 사회복지시설에서 독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쓴 글을 묶어 ‘들꽃사랑 이야기’란 문집을 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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