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3월 미국의 비행기 제작업체 보잉 이사회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던 대형 여객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보잉 747 프로그램’ 추진을 결정했다.
더 크고, 더 멀리 나는 초대형 제트기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보잉은 상황이 아주 절박했다.
미국 공군의 차세대 대형 수송기인 C-5 계획에서 경쟁사인 록히드에 개발권을 빼앗기고 여객기 시장에선 맥도널 더글러스의 DC-8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었다.
새롭고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블루오션(미개척 시장)’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보잉의 야심 찬 프로젝트에 즉각 반응이 왔다.
한 달 뒤 팬암항공사가 25대를 사겠다는 주문을 낸 것을 시작으로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세계 항공사들이 5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비가 투입되는 보잉 747을 미리 주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보잉은 워싱턴 주 에버렛의 숲으로 뒤덮인 미개척지를 개발해 보잉 747 제작을 위한 2억 달러짜리 대형 공장을 지었다. 2만 명이나 되는 공장 종업원이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밤낮없이 일했다. 비행기 제작 기간인 3년 동안 휴일은 크리스마스뿐이었다고 한다.
1969년 2월 9일. 드디어 보잉 747-100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뒤 시험 비행을 성공리에 마쳤다.
7만5000장의 설계도면과 1100개의 부품업체가 필요했던 이 비행기는 동체 길이 68m에 승객 490명, 승무원 38명을 태울 수 있는 첫 점보(jumbo) 여객기로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보잉 747은 1969년 말 팬암항공사에 첫 번째 항공기가 인도된 뒤 이듬해 역사적인 첫 상업운항을 시작했다. 이후 747-200, 747-300에 이어 747-400 시리즈가 잇따라 나오면서 세계 항공업계를 주름잡았다.
747 시리즈를 전 세계에 수천 대나 판매한 보잉 덕에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개선되었다니 회사 하나가 나라까지 먹여 살린 셈이다.
보잉 747의 등장은 장거리 대량 수송의 길을 튼 세계 항공업계의 혁명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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