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캐멀 스노의 입에서 이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194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1905∼1957)의 새 디자인을 보고 나서였다. 패션계의 대모인 스노의 이 한마디로 프랑스 출신의 신진 디자이너는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1947년 2월 12일 디오르가 첫 컬렉션에서 ‘뉴룩’을 발표했다. 어깨가 자연스럽게 내려오고, 허리가 잘록하며, 가슴이 풍만한 디자인이었다. 무릎길이 스커트는 8개의 라인을 넣어서 넓게 만들었다.
21세기 여성의 눈으로는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엔 ‘혁명’이었다. 뉴룩 이전의 옷은 ‘밀리터리룩’이었기 때문이다. 각진 어깨와 재미없이 무난한 스커트 선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이 컸다. 생존이 절박했던 만큼 디자인도 다소 음울하고 밋밋했으며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실용적인 옷이 대세였다. 이렇게 중성적인 디자인이 한창일 때 디오르가 선보인 ‘가슴은 부풀리고 허리는 꽉 조이는’ 실루엣은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여성성의 부활’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뉴룩은 이후 10년 동안 주류 디자인이 된다. 디오르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와 정확하게 겹쳐진다.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40대가 돼서야 자신의 이름을 건 의상실을 열었고 첫 컬렉션을 연 디오르의 생애를 돌아보면, 그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승부한 디자이너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고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정치학을 전공한 디오르. 그렇지만 강의실보다도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주 드나들었고, 졸업한 뒤에도 전공과는 한참 다른 관심사 때문에 괴로워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화랑을 열어 줬지만, 아버지의 파산과 어머니의 죽음이 겹쳐 디오르는 화랑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취미 삼아 하던 의상 스케치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 갔는데, 이 스케치의 반응이 좋아서 의상실을 열 수 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였다.
고생스러운 체험을 쌓아 온 디오르에게 운명은 환한 웃음을 보내기 시작한다. 뉴룩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데 이어 영국 왕실을 위한 특별 컬렉션,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대중화 전략, 모조품 방지를 위한 라이선스제 도입, 향수와 란제리 사업 등을 펼치면서 디오르는 패션 시장을 개척했다. 뉴룩 발표 10년 뒤인 1957년, 디오르는 52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10년의 집중된 활동 기간에 그가 이룬 업적은 패션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할 만큼 의미 있는 것이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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