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주었구나. 고맙다.” “아저씨….”
13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수원시청 앞.
당일 목표지점을 향해 다가가는 장애인 마라토너 박종암(55·호주 교포) 씨의 볼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테이프를 붙잡고 박 씨를 맞은 나혜진(23·경기 부천시) 씨의 눈시울도 점점 붉어졌다.
▶본보 10일자 34면 참조
“시민 갈채에 추위고생 훌훌”
박 씨는 2000년 호주의 정유회사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오른쪽 발가락을 모두 잃는 장애를 입었지만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마라톤을 다시 시작했고, 18일 서울에서 열리는 ‘2007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 참가에 앞서 동아일보사와 월드비전이 벌이고 있는 ‘나눔 마라톤’ 성금 마련을 위해 1일부터 15일까지 부산∼서울을 종주하고 있다.
혜진 씨와 박 씨의 만남은 동아일보 10일자 박 씨의 대전 경유 기사가 계기가 됐다.
혜진 씨의 아버지인 나정철(59) 씨는 이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박 씨의 연락처를 물었다.
“딸(혜진)이 2004년 충남 천안에 있는 대학으로 통학하기 위해 열차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 박 씨와 비슷한 장애를 입었어요. 그 충격으로 학교도 그만뒀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으니….”
나 씨는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뒤 “딸을 한 번만이라도 꼭 만나봐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박 씨는 수원시청 앞 골인지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혜진 씨는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버텨 만남은 무산되는 듯했다. 나 씨도 아내와 아들이 대신 약속장소로 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혜진 씨가 마음의 문을 열었다. 박 씨가 골인지점에서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 것은 예상치 않았던 혜진 씨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자신의 장애 부위를 보여주며 혜진 씨에게 절대로 꿈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나 씨의 초청에 기꺼이 응해 집까지 찾아가 같이 식사도 하고 밤늦게까지 자신의 장애 극복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혜진 씨는 14일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친구들과 전화를 했고 어머니를 따라 미장원에 가기도 했다.
박 씨는 “13일 동안 뛰면서 여러 만남이 있었지만 혜진이와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호주에서 날아온 것은 아마도 이번 만남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씨는 “혜진이가 다른 사람과 말을 한 것이나 식구들이 얼굴을 활짝 펴고 웃어본 것 모두 악몽 같았던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박 씨는 장애 입은 몸으로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참가선수 중 최고기록 키루이 입국
“케냐 선수들이 타고났다고요? 아니에요. 우리가 잘 달리는 것은 훈련량이 많기 때문이에요.”
마라톤 왕국 케냐 선수들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 중 하나는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격을 갖췄다’는 것. 그러나 18일 열리는 2007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8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선수 중 기록 랭킹 1위인 폴 키프로프 키루이(27·케냐)는 14일 입국 인터뷰에서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가 잘 달리는 것은 오로지 훈련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로테르담마라톤에서 2시간 6분 44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운 키루이는 서울국제마라톤에 대비해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보름간 훈련했다. 매일 30∼40km를 달렸으니 서울∼부산을 5번은 왕복할 거리인 3000∼4000km를 달린 셈이다.
키루이는 “세계 기록(2시간 4분 55초) 보유자인 폴 터갓은 나보다 훈련을 더 많이 한다. 우리가 타고난 마라톤 선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이봉주(37·삼성전자) 이후 한국 마라톤이 주춤하고 있다고 하자 “그것은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정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키루이는 “마라톤은 내게 꿈이다. 내 인생의 빛을 밝혀줬다. 4개월간 컨디션 조절을 잘 했기 때문에 이번에 대회 기록(2시간 7분 06초)을 깨며 우승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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