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기부 문화는 반드시 정착돼야"…8人의 나눔톡(Talk)

  • 입력 2007년 3월 28일 18시 48분


"가게를 좀 빼주셔야겠어요."

"아니, 왜요? 임대료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2005년 9월 어느 날 서울 구로구 구로동 구로시장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던 문인근(60) 씨는 건물주로부터 돌연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2001년부터 매달 치킨집 운영 수익의 1%를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온 문씨. 틈틈이 '1일호프'를 열어 무의탁장애인 노인 등 넉넉지 못한 이웃을 가게로 불러다 음식도 대접했다.

하지만 뜻밖의 불행은 그가 삶의 작은 기쁨으로 여기던 나눔에서 비롯됐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죠. 나중에 들어보니 자꾸 제 가게 때문에 건물 주위에 장애인 노인들이 얼쩡거리는 게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가게를 닫은 후 문씨는 아직까지 마땅한 새 일거리를 찾지 못해 '실업자'가 됐다. 하지만 지금도 매달 일정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문 씨에게는 '하면 즐겁지만 괴롭기도 한' 나눔의 경험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들'이 생겼다. 문 씨처럼 자신의 수입 1%를 아름다운 재단에 장기기부해온 몇몇 사람들과 지난해 9월부터 매달 모임을 갖게 된 것.

'나눔'에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을 빼고는 살아온 길이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다. 시인인 김천중(59) 씨, 개인사업가인 한학수(63·두기프러스 대표이사) 씨, 부천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이의종(50) 씨,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한수길(58) 씨, 구두수선점 주인 이창식(50) 씨, 택시기사 김형권(60·이상 자영업) 씨, 호텔 전문경영인인 한동림(65·온양그랜드호텔 대표이사) 씨. 이들의 3월 월례모임은 26일 서울 소공동의 한 식당에서 열렸다

나눔에 앞장서온 사람들인 만큼 투명하지 못한 자선단체들의 운영방식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다.

"기부단체 정말 많죠. 특히 수해라도 나면 각 기관까지 자동응답전화(ARS) 설치하고 기부를 받습니다. 하지만 모금된 돈의 용처를 알려주는 곳이 과연 몇이나 되나요."(이충식 씨)

"내가 기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온갖 자선단체라는 곳에서 손을 벌려와요. 1% 기부하며 살겠다는 사람한테 전 재산 다 내놓으라는 식이에요. 물론 그만큼 기부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도 되겠지만…."(문인근 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소액기부 문화는 반드시 정착돼야 한다"는 데 뜻이 일치했다.

"양극화 해소하겠다는 정권은 계속 양극화 심화시키고…, 믿을 건 우리 같은 시민 밖에 없습니다. 소액이라도 꾸준히 있는 쪽에서 없는 쪽으로 돈이 흘러가야 해요."(이의종)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이는 법. 이들은 수입의 1% 기부 말고도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은 "주위에 널렸다"고 서로서로 지혜를 나눴다.

"택시비가 없다는 손님에게는 기부단체 계좌를 알려주며 '나중에 택시비 두 배를 이곳에 송금하라'고 합니다. 진짜로 낼지 안 낼지는 그 사람 양심에 맡기죠."(김형권)

쉽지만 어려운 나눔. 이날 참석자들의 결론은 이랬다.

"말을 앞세우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조용히 행동만 하니까 점점 쉬워지더군요."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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