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代 80년… 동아는 자부심”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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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년이 다가옵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1년에 이모부가 ‘동아일보에서 함께 일하자’고 권유할 때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모부 임영철(2003년 작고) 씨에 이어 2대에 걸쳐 80여 년간 동아일보 지국(보급소)을 운영해 온 충주독자센터 이종묵(60·사진) 사장.

그는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본보 창간 87주년 기념식에서 장기근속상(30년)을 받았다.

그는 1970년 제대 후 백화점 양품부에서 일하다가 이모부의 권유로 동아일보와 인연을 맺었다.

임 씨는 동아일보 창간 직후 개인보급소 창설소장을 지냈고, 1970년대 동대문 제2보급소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모부는 동아를 떠나 살 수 없을 정도로 자긍심이 컸습니다. 저도 한 치 망설임 없이 동아일보를 선택했어요. 동아는 선망의 대상이었죠.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 사람들을 관리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당시 동사무소 직원이나 경찰이 이모부의 행동을 주시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씨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청량리, 중구 장충동 지국 등에서 근무했고 1981년부터 충북 충주지국에서 근무했다. 그는 36년 재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1974년 정권의 탄압으로 일어난 ‘백지광고’ 사건을 꼽았다.

“광화문 본사에 가보니 격려 광고를 내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함석헌 선생이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활화산 같은 이 소리를’이라고 쓴 족자를 나눠줬어요. 우리 지국도 격려 광고에 참여를 했죠. 구독료 1, 2년분을 선납하는 독자도 있었습니다. 동아일보에 몸담고 있다는 자긍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자들이 농성 중인 본사 안에도 들어가 기자의 애사심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장기근속 독자센터 사장

본보 창간 87주년 시상

▽30년=강대석(법원) 조남열(충청연구단지) 송재훈(여산휴-1) 이창배(여산휴-2)

▽20년=정원택(금촌) 정봉환(서강) 박희용(구월) 김일석(인천갈산) △진용근(괌)

▽10년=서완식(답십리) 육상헌(의정부남부) 김종범(철원) 조웅귀(봉일천) 조인철(광탄) 김순애(하안) 맹동진(여의도) 차상준(장기) 송서일(연수중부) 윤우성(신대치) 김진권(마천) 유경덕(상일) 오용기(오목) 정연우(이천북부) 김만복(주문진) 김덕용(제천남부) 권갑천(서대구) 박원상(인의) 노현철(흥해) 김대진(신영주) 조영길(두호) 정영길(경북성주) 공우정(마산합성) 정재현(마산중리) 김병학(남통영) 강동희(고성) 최윤호(신마산) 손광덕(울산강남) 이승곤(남울산) 방응남(옥정) 최병훈(외동) 김의도(유성) 양재갑(영동) 신경호(중촌) 최성수(서청주) 이시우(제주남원) 김현준(동운) 송광운(광주양산) 송병주(일곡) 이애자(광양제철) 김병기(동광양) 김재봉(고흥) 전성임(구리교판) 권춘배(광주교판) 송태련(다카) 박영곤(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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