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쓴 한인청년 구하자” 1970년대 ‘이철수 사건’ 주역들 美 회동

  • 입력 2007년 4월 9일 03시 04분


1970년대 미국에서 갱 단원 살해 혐의로 구속돼 종신형이 선고됐던 재미동포 이철수(55·왼쪽) 씨와 당시 끈질긴 구명운동 끝에 무죄 석방을 이끌어 낸 열린우리당 유재건(70) 의원이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1970년대 미국에서 갱 단원 살해 혐의로 구속돼 종신형이 선고됐던 재미동포 이철수(55·왼쪽) 씨와 당시 끈질긴 구명운동 끝에 무죄 석방을 이끌어 낸 열린우리당 유재건(70) 의원이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에서는 7일 1970년대 미 한인사회를 한데 뭉치게 했던 재미동포 ‘이철수 씨 사건’의 관계자들이 모여 ‘정의의 재판-이철수 구명운동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철수 사건’은 1973년 로스앤젤레스의 재미동포 1.5세인 이 씨(55·당시 21세)가 갱 단원을 살인한 혐의로 구속돼 종신형을 선고받자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구명운동을 벌여 1983년 무죄 석방된 사건이다.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은 1977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기자였던 이경원 씨와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구성해 구명에 나섰다.

유명한 인권변호사 레너드 와인글래스 씨 등 미국인 변호사 3명이 무료 변론을 맡았고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안 커뮤니티’도 가세했다. 한인사회는 재판 비용 20만 달러를 모았고 이후 6번의 재판을 통해 이 씨는 누명이 풀려 석방됐다.

유 의원은 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 씨 후원금 중 남은 7400달러로 한인 젊은이를 지원하는 한미연합회(KAC)가 창설됐다”고 밝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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