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 사건’은 1973년 로스앤젤레스의 재미동포 1.5세인 이 씨(55·당시 21세)가 갱 단원을 살인한 혐의로 구속돼 종신형을 선고받자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구명운동을 벌여 1983년 무죄 석방된 사건이다.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은 1977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기자였던 이경원 씨와 ‘이철수 구명위원회’를 구성해 구명에 나섰다.
유명한 인권변호사 레너드 와인글래스 씨 등 미국인 변호사 3명이 무료 변론을 맡았고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안 커뮤니티’도 가세했다. 한인사회는 재판 비용 20만 달러를 모았고 이후 6번의 재판을 통해 이 씨는 누명이 풀려 석방됐다.
유 의원은 8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 씨 후원금 중 남은 7400달러로 한인 젊은이를 지원하는 한미연합회(KAC)가 창설됐다”고 밝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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