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크게 히트했던 가요 ‘사랑일뿐야’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벗어나려고 떠났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매일 서로 지지고 볶지만 ‘이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내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
운명적 만남이라고나 할까.
2001년 4월 11일 천신만고 끝에 합병 본계약 협상을 타결시킨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이 둘의 관계도 찬찬히 뜯어보면 ‘결국 하나 될 운명’ 같은 것이 느껴진다.
둘을 잇는 핵심 DNA는 서민(庶民). 국민은행 탄생의 법적 근거는 1961년 제정된 국민은행법. 이 법은 국민은행의 목적을 ‘서민 대중에 필요한 자금의 대출 등을 통해 서민 경제의 발전과 향상을 기한다’고 못 박았다. 그 정신에 따라 “상호 중에 ‘국민은행’이란 문자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 금융기관은 ‘국민은행’임을 표시하는 문자를 사용할 수 없다”(제6조)고까지 명시했다.
1969년 공포된 한국주택은행법을 근거로 설립된 주택은행의 목적도 ‘서민주택 자금의 조성’.
1999년 한 여론조사기관이 서울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현재 거래 중인 모든 은행’을 복수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국민은행이 응답자 50.2%로 1위. 주택은행이 43.3%로 2위. 두 은행이 명실상부한 서민의 은행임을 입증한 셈이다.
복권은 두 은행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준비하시고, 쏘세요!”로 유명한 주택복권은 1969년부터 주택은행에서 발행됐다. 당시 복권 가격은 100원. 1등 당첨금인 300만 원은 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서울 30평형대 아파트 값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2000년대 들어 주택복권에 담긴 ‘내 집 마련의 꿈’은 통합 국민은행의 로또복권이 탄생시킨 신조어 ‘인생 역전’에 왕좌를 물려줬다.
통합 국민은행은 2002년 ‘KB’라는 기업이미지(CI)를 발표하며 “서민 은행의 이미지에서 탈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강정원 현 국민은행장은 2005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은행의 정체성은 서민 고객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에 서민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같은 존재’임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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