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유난히 무더웠던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서울맹학교 김호식(44·사진) 교사는 당시 학교에서 달리기와 윗몸일으키기 등 체력장 연습에 열중했다. 어느 날 그는 거울을 보다 눈 가장자리가 벌겋게 충혈된 것을 발견했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터라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눈은 점점 흐려졌다.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병명은 ‘망막박리’. 물체의 상이 맺히는 망막이 눈동자 안에서 떨어지면서 영양공급이 중단돼 시신경과 세포가 죽는 병이다.
시력을 잃은 그는 고교입학 연합고사를 치르지 못하고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서울맹학교에 입학했다. 고교 2학년 때 전문가를 찾아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그나마 흐릿하게 보이던 눈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됐다.
그는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받으며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교를 졸업한 그는 1981년 단국대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책을 맘껏 읽으면서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특수교육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교사가 되기는 시력을 되찾는 것만큼이나 더 어려웠다. 시각장애인을 교사로 선뜻 채용하려는 학교가 없었다. 그는 직장을 구하면서 눈을 잃는 것보다 큰 아픔을 경험했다.
“교원임용시험 공고가 난 부산맹학교에 지원했지만 자격 요건이 안 된다며 원서를 받으려 하지 않았어요. 세 차례나 부산에 내려가 학교를 설득해 임용고사를 칠 수 있었죠.”
그는 시각장애인으론 처음으로 공립학교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10년간 부산에서 시각장애학생을 지도하다 1995년 모교인 서울맹학교로 옮겼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복지제도 마련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점자연구위원회 회원과 한국시각장애인아카데미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2일 국립특수교육원이 국내 최초로 그를 시각장애인 교육전문직에 임용한 것. 그는 9일부터 장애아동을 위한 교수·학습자료 개발 및 특수교육 교원연수 분야에서 교육연구사로 활동하게 된다.
김 교사는 “시각장애 후배들이 걸어갈 길을 닦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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