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전숙희씨 문단-정권 비화 밝힌 일기모음 책 발간

  • 입력 2007년 5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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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수필가 전숙희(88·사진) 씨가 1968∼2004년의 일기를 모은 책 ‘가족과 문우들 속에서 나의 삶은 따뜻했네’(정우사)를 냈다.

전 씨는 문필활동뿐 아니라 국제PEN클럽 한국본부장을 지내고 한국현대문학관을 건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인 작가다.

문인뿐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과도 활발하게 교유했던 그의 기록에는 문단 뒷얘기와 함께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도 담겨 있다.

박화성 모윤숙 김남조 등 동료 여성 문인들과 우정을 나누던 시간, 펄 벅과 루이제 린저 등 해외 작가들을 직접 만나 ‘대가의 풍모’를 느꼈던 순간 등이 묘사됐다.

특히 1983년부터 1991년까지 PEN클럽 한국본부장을 지냈던 전 씨가 1984년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일을 기록한 부분은 흥미롭다. ‘11월 21일(수) 손소희는 일금 3000만 원을 줄 테니 회장에 나오지 말라는 요청이다.’ 소설가 손소희는 당시 문학권력자로 꼽히던 소설가 김동리의 부인. 손소희가 PEN 본부장으로 출마한 뒤 전 씨를 만나 돈을 줄 테니 사퇴하라고 청했다는 얘기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8년 전 씨는 서울에 국제PEN대회를 유치하지만 국내 인권 상황 때문에 해외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난다. 이때의 정황도 일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1987년 4월 3일(금) 국제PEN에서는 투옥 작가 문제로 사흘거리로 편지가 오고 국내에서는 해결책이 없고, 회장은 왜 했던가.’ 1987년 6월 10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선출 축하연에 간 전 씨는 “안에서는 술과 노래와 꽃과 웃음으로 열띠어 있는데, 나오니 여전히 데모대 진압군들이 에워싸고”라며 심란한 심정을 토로한다.

1992년 1월 4일 현대 정주영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완전히 정치에 투신하려는 결의’를 확인한다. “(김)남조와 둘이서 (정 회장에게) 재고하시라고 충고했다. 미움 받을 작정하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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