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1월 16일. 미지의 대륙 남극에 대한민국은 그렇게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로 남극관측탐험대 단장을 맡았던 윤석순(70)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은 "20년이 넘었지만 그 때의 벅찬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의 남극탐험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1986년 11월 남극조약에 가입했고 1988년 2월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준공했다. 2002년에는 북극에 다산과학기지도 세워 세계에서 8번째로 남북극에 모두 기지를 보유한 나라의 반열에 올랐다.
극지(極地)사업에 대한 홍보 및 교육을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 '한국극지연구진흥회'는 내년 세종기지 준공 2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윤 회장은 "극지사업은 정부의 지원과 대원들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며 국민들의 성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극대륙의 중요성은….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이 인류의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극지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극지는 지구환경 변화의 원인을 찾는 연구거점인 동시에 신이 인류에게 준 마지막 자원의 보고다. 석유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과 크릴새우 메로를 비롯한 수산자원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선진국들은 남극에 막대한 재정과 첨단기술과 장비를 투입해 불꽃 튀게 경쟁하고 있다. 상주기지만 20개국 37개에 이른다. 미국의 한해 남극 예산은 수십 억 달러에 이르며 국무부 내 전담부서를 두고 있다. 일본도 총리부 직속으로 남극지역관측통합추진본부를 두고 있다. 후발국가인 중국도 기지를 2개 보유하고 있고 남극에 천문기상대까지 세울 계획이다."
-2007~2008년은 50년 만에 맞는 제4차 '국제극지의 해(IPY)'다.
"4차 IPY를 맞아 각국은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국제적 위상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기간 연구결과에 따라 남극조약 개정 또는 새 의정서 발효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실적에 따라 크릴과 메로 어획량 쿼터가 결정될 정도로 극지는 연구에 투자한 만큼 국가적 이익이 보장되는 곳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우리 정부의 대책은….
"정부도 지난해 5월 남극활동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11년까지 총 2289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2009년 쇄빙선이 건조되고 2011년 남극에 제2기지가 건설될 예정이다. 하지만 예산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계획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또 기술연구는 과학기술부로, 쇄빙선 및 기지건설 사업예산은 해양수산부로 이원화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세종기지 준공 2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20년 동안 극지사업을 해 왔지만 국민들은 남극에 세종기지가 있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홍보가 되지 않으면 정부가 어떻게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겠나. 20주년 기념식, 극지 관련 영상교재 제작 및 전시회, 기념우표 발행, 위문품 전달 등의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윤 회장은 극지대원들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숨은 애국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성원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
"1년 내내 휴가 한번 없이 고생하고 있는 우리 극지대원들의 고생을 너무 몰라준다. 얼마 전 위문품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게 뭐냐고'고 물었더니 특수 구명조끼 및 컴퓨터 등 필수장비만 얘기하더라. 일본에서는 남극 월동대가 출발할 때 관계 장관들이 총출동해 성대하게 환송식을 갖는다. 전기공으로 남극에 다녀오기만 해도 영웅대접을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대우가 열악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극지연구를 하려는 연구자가 점점 줄고 있어 걱정이다."
-어떤 계기로 남극에 관심을 갖게 됐나.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로 있을 때다. 1978년부터 남극조약 가입을 시도했지만 탐험실적이 없어 번번이 좌절됐다는 얘기를 우연히 전해 들었다. '내가 탐험대를 조직해 남극에 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해양연구소의 장순근, 최효 박사 등 과학자와 홍석하, 허욱 등 쟁쟁한 산악가들을 찾아 탐험대를 꾸렸다."
하지만 남극탐험을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당시 외무부, 수산청을 찾아 협조를 구했으나 '탐험가도 과학자도 아닌 사람이 왜 저러나'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무작정 청와대로 들어갔다. 대통령과 10분 면담을 허락받았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다보니 어느 새 1시간이 훌쩍 흘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임자, 살아서 돌아와'라며 등을 두드려 주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20년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윤 회장은 "남극을 향한 내 체온은 아직도 50℃ 이상"이라고 말한다. "극지사업은 우리 후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극지사업에 관심과 성원을 가져주십시오."
김재영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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