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조세희 ‘난쏘공’ 출간

  • 입력 2007년 6월 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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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조세희(65) 씨는 등단을 하고서도 소설을 거의 쓰지 않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그는 등단 10년 만인 1975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집필에 들어간다. 유신체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줄임말 ‘난쏘공’으로 오래도록 알려지게 될 이 소설은 1978년 6월 5일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소설은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쟁이 일가의 이야기다. 난쟁이 아버지와 어머니, 영수 영호 영희 세 남매는 ‘날마다 지기만 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 이들에게 어느 날 철거계고장이 날아든다. 쇠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자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다녀야 한다. 죽어라 일해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고, 달나라로 떠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는 결국 굴뚝에서 떨어져 죽는다.

도시 빈민의 처참한 생활상,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실태를 정면으로 고발한 ‘난쏘공’은 1970년대 사회에 대한 강렬한 문학적 보고서로 꼽힌다. 산업 개발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사회에 이 소설은 커다란 충격으로 던져졌다.

근무시간에 졸다가 반장이 들고 다니는 옷핀에 찔리고, 야근 도중 잠을 쫓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든 나은 근무 환경을 만들겠다는 노동자들은 밤에 몰래 끌려가 뭇매를 맞는다. 그런데 소설은 참혹하다기보다 서글프도록 서정적이다.

소설은 시제(時制)가 뒤섞여 있어 읽어 내기가 까다롭다. 이야기가 큰 줄기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연상되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판타지적 구조로 이루어져 난해하다. 그런데도 ‘난쏘공’은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부동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소설의 환상적인 분위기에 대해 작가는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후에 고백한다. 독특한 제목도 당시 화제가 됐던 인공위성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난쏘공’을 냈던 문학과지성사는 판금 조치를 피하기 위해 표지를 최대한 예쁘게 꾸몄다. 소설의 날선 비판 정신을 동화적인 이미지로 덮으려고 했던 것. ‘난쏘공’은 2000년 이성과힘 출판사로 옮겨졌으며 2005년 12월 200쇄를 돌파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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