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서 영결식을 끝내고 오희준의 제주 서귀포 빈소에 내려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희준이) 아버님이 자식을 죽게 한 저와는 얼굴도 마주하기 싫어하신 거죠. 제가 얼마나 밉겠어요. 다 이해합니다. 이번 주말 희준이네와 전남 영광의 이현조 집으로 가 아버님들을 다시 찾아뵙고 또 사죄를 할 겁니다.”
산악인 박영석(44·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 씨. 6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세계탐험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1%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지난달 16일 박 씨가 이끌던 ‘2007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의 오희준(37·서귀포 영천산악회) 이현조(35·전남대 산악부 OB) 대원은 에베레스트 남서벽 해발 7700m의 캠프4에서 눈사태를 맞아 1200m를 추락한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오 씨는 1997년부터, 이 씨는 1998년부터 박 씨와 히말라야 등반과 극지 탐험을 함께한 동지들. 2000년부터는 박 씨의 집에서 함께 지낸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지난달 27일 새벽 두 대원의 유골을 안고 귀국한 박 씨는 “죄인인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했다. 설득을 거듭한 끝에 그는 열흘이 지난 이날에야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나”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봤다. “그날 오전 1시 45분경 희준이에게서 무전이 왔어요. 눈이 많이 내리는데 로프에 매달아 놓은 산소통과 장비들이 날아갈까 봐 걱정이라고…. 2시에 갑자기 교신이 끊긴 뒤 더는 연락이 없어 걱정하다가 날이 샌 뒤 올라가 보니까 텐트가 아예 사라졌더라고요. 시신을 찾았을 때는 둘 다 안전띠를 착용하고 한쪽 발에는 산악 부츠를 신고 있었어요. 탈출을 시도하던 중 눈이 덮친 거죠. 한 30분만 일찍 움직였어도 살아 있었을 텐데….” 그는 첫마디부터 눈시울을 붉혔다.
박 씨는 사고가 난 뒤 ‘이젠 현역에서 물러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되겠다, 동생들 몫까지 살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 씨는 “재단을 설립해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이름을 붙인 장학금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등반이 너무 무모했다는 평가도 있는데…”라고 그가 아파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정말 어려운 등반이었다. 하지만 어렵지 않으면 도전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두 대원도 의미 있는 등반이라고 무척 좋아했다. 그들은 진정한 산악인이었다.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이고, 안 되면 그 다음 해에 또 도전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씨는 7월 8일부터 27일까지 19박 20일 동안 부산에서 충북 충주시를 거쳐 서울까지 약 530km를 대학생들과 함께 국토순례에 나설 계획이다. 2004년부터 그가 대장을 맡아 매년 해 온 ‘대한민국 문화원정대’ 얘기다.
그는 “올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한번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지난 3년간 행사를 하면서 처음엔 자신만 생각하던 학생들이 완주 무렵엔 변하는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싶다”고 했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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