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헌법 수호해야 할 책무 있어”
―노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2004년 탄핵사건 결정문에 명시했듯이 대통령은 국민 어느 누구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현행 헌법은 특히 과거 헌법과 다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이며, 설령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전 국민의 뜻을 모아 개정한 헌법이다.”
―이번 대통령 발언이 지난번 탄핵 사건 때보다 더 강하다는 시각도 있다.
“2004년 당시 헌재는 대통령의 발언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지에 대해서만 판단했을 뿐 대통령의 자질에 관해선 투표로 선출한 국민이 책임과 판단 권한을 갖고 있다고 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최근 선관위가 사전선거운동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내가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다.”
―2004년 상황이 재연되는 이유가 헌재나 선관위가 결정을 집행할 강제적인 수단이 없어서 빚어지는 일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 헌재나 선관위는 ‘칼’을 가진 기관이 아니다. 구속을 하거나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분히 상징적인 기관이다. 국민 개개인은 물론 특히 힘을 가진 기관은 이런 기관의 결정을 자발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정하면 어떻게 법치가 이뤄지겠나.”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 기본권 보호해야 하는 국가기관”
―청와대에서는 선관위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가기관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주체이지 보호받아야 할 객체가 아니다.”
―대통령은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없다는 건가.
“헌법소원 제도는 국가권력의 행사나 불행사로 인해 개인이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내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자연인으로서의 대통령이 권리를 침해당한 게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한 발언 때문에 선거법 위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1차적 책임을 지는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인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낸다는 것은 헌법소원 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확립된 판례다.”
―선관위의 경고에도 노 대통령의 반박 발언이 이어지고 있는데….
“세계의 민주화된 어떤 국가에서 그 나라 지도자가 자국 헌법에 대해 그렇게 (노 대통령이 ‘그놈의 헌법’ ‘5년 단임제 쪽 팔린다’라고 말한 것을 지칭) 표현하는 것을 과문한 탓인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다. 독재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민주 세력이 기존 헌법을 무너뜨릴 때나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차분하던 주 전 재판관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높아졌다. 그는 “대통령은 취임할 때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하지 않았나. 법치국가를 지탱하는 헌법이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국민 합의로 고치기 전까진 존중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주 전 재판관은 ‘노 대통령과 오랜 악연이 있는데 2004년 탄핵 사건 때 어떤 의견을 냈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건 헌재가 아닌 국민의 권한이라고 생각했다. 국회의 탄핵소추도 어느 정도 감정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라고만 답했다.
주 전 재판관은 부산지검 공안부장으로 있던 1987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의 장례식을 방해한 혐의로 당시 변호사였던 노 대통령을 구속한 인연이 있다. 그렇지만 주 전 재판관은 “당시에는 노 대통령이 참 순수한 분이란 생각을 했다”고 뼈있는 얘기를 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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