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개성 만월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개성 송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5세에 개성의 한 상점에서 무급(無給) 점원으로 출발했다. 그곳에서 개성상인 특유의 근검함과 신용 제일주의를 배운 그는 1937년 포목점인 건복상회를 개업해 사업을 시작했다.
광복 이후 서울 종로에서 개풍상사를 설립해 당시 수출 실적 1, 2위를 다투는 업체로 키워 냈고, 금융업에도 관심을 보여 서울은행 공동 창립에 나서기도 했다.
1959년 동양제철화학의 전신인 동양화학공업을 세운 뒤부터는 국내에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화학산업 개척에 매달렸다.
특히 2001년 동양화학공업과 제철화학, 제철유화를 합병해 동양제철화학을 연간 매출액 1조 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키워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인은 국내 화학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과 대통령 표창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또 1986년과 1991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양국 간 경제외교활동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기사작위와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각종 경제단체에 활발하게 참여해 ‘경제발전 1세대’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고인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9년 재단법인 회림육영재단을 세워 장학사업을 벌였고, 1982년에는 인천 송도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송도 중고등학교를 운영했다.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2005년 평생 수집한 문화재 8400여 점과 자신의 호 ‘송암’을 딴 ‘송암미술관’(인천 남구 학익동)을 인천시에 기증해 화제가 됐다.
고인은 당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천에서 뜻있는 사업을 시작했고, 인천에서 성장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며 “인천 시민에게 빚진 것을 인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은 생전에 임직원들에게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또 ‘중용처세’(中庸處世·부족하거나 지나치지 않으며 편중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라는 경구(警句)를 붓으로 직접 써 회사 사무실마다 걸어 놓고 임직원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당부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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