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뒤에 있던 동료 여배우들이 깔깔대며 소곤거린다.
오달수(39)와 이해제(36). 두 사람은 연극계에서 소문난 '커플'. "연습 중 쳐다보는 눈빛이 특별하다" "자기 집 놔두고 상대방 집에 가서 잔다" 등 이들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에 대해 묻자 이들은 "아휴~"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놈의 시기와 질투는 16년이 가도 없어지지를 않는 구나."(오달수)
"형이랑 한 번 자보니까(?) 다시는 같이 못 자겠던데요."(이해제)
27일 밤 11시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연극 '코끼리와 나'(9월21일 개막)의 연습을 막 끝내고 온 두 사람과 만났다.
충무로에서 '조연 스타'로 입지를 다진 오씨와 '해일' '육분의 륙' '다리퐁 모단걸'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 겸 극작가인 이 씨는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대표와 상임 연출로 7년 째 한솥밥을 먹고 있는 사이. 두 사람의 인연은 그보다 한참 전인 1991년 부산 가마골 소극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2기로 들어온 이씨에게 7기였던 오씨와 동기들은 극단에서 무서운 선배들이었다. 하늘같던 오씨가 '만만하게' 느껴진 건 오씨의 교통사고 이후다.
"극단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 달수 형이 탄 차가 다른 차랑 부딪쳐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만큼 큰 사고를 당했어요. 의식을 잃은 달수형도 죽는 줄 알고 저는 부랴부랴 인공호흡을 시도하는데 달수 형이 정신을 차리더니 첫 마디가 '시계는? 시계는?' 하더라구요. 그 날 아버지의 '론진'시계를 몰래 차고 나왔거든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속으로 어이없어 하는데 연락받고 병원으로 달려온 달수 형 어머니가 '달수야~' 하고 외치면서 오시더니 '시계는?' 하시는 거예요. 하하."
두 사람은 둘만의 공통점으로 "부산 출신의 연극인이라는 거, 부산 출신임에도 '롯데 자이언츠'에 관심 없다는 거, 잡기에 능하지 못하고 술만 좋아하는 거"를 꼽았다.
극단을 만든 것은 2000년. 이 씨가 불쑥 제안하자 오 씨는 더 묻지도 않고 승낙했다. 오 씨의 부인은 "당신 인생에 도움 되는 것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극력 반대했지만 오 씨의 생각은 달랐다. "힘들겠지만 만들면 내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극단을 꾸리면서 인생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맞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연극은 "인생을 읽는 것"이다. 오 씨는 "연극쟁이들이 인생을 써나간다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실은 대본을 통해 연기를 통해 극단 운영을 통해 인생을 읽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솔직히 중간에 도망가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버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웃었다.
이번 연극에서도 둘은 세 개의 '각'을 찾기로 했다. 두 개는 이미 찾았는데 하나는 깨달을 '각'이고 다른 하나는 '자세'를 뜻하는 '각'이다. 두 번째 '각'은 데뷔 후 가장 큰 극장에서 연기를 펼치기 때문이란다. 세 번째는 아직 못 찾았다며 "곧 찾겠죠"라고 혼잣말하던 이 씨는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아! 새길 '각'이다. 혼을 새기고 작품을 새기고 우정을 새기고…" 화장실 다녀온 오 씨에게 "형, 찾았다. 찾았어. 세 번 째 '각'"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10대 소년이다.
둘 사이에 불협화음은 없을까? "극단 운영 문제 등으로 충돌할 때도 있었지만 신뢰가 있으니까 위기는 없었어요.(이 씨)" "그건 우리가 2인조라서 그래. 3명 이상이 되면 갈등이 생기거든. 비틀즈처럼… (오 씨)"
'코끼리와 나'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 시대 최초의 코끼리를 소재로 한 작품. 기록에 따르면 태종 11년 일본에서 예물로 코끼리를 보냈으나 이 코끼리는 관리를 쳐 죽인 죄로 섬에 '귀양' 가게 된다. 이 씨는 이 짧은 기록에 착안해 코끼리 '흑산'과 이를 조련하는 소도둑 '쌍달'의 우정을 그렸다.
이 씨는 처음부터 '쌍달' 역으로 오 씨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썼다고 한다. "달수형은 진지함과 희극적인 면이 공존하는 배우예요. 웃기면서도 그 안에 비극이 전해지고 악역을 해도 연민이 느껴지는 배우죠." 오 씨가 씨익 웃으며 맞받아친다. "그게 나의 전략이지. 그렇게 보이게끔 하는 게."
쌍달은 코끼리 '흑산'을 혐오하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만 차츰 흑산과 가까워지며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코끼리는 인생 어디에나 있는 존재예요. 마누라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죠. 친구일 수도 있죠. 때로는 버리고 싶고 도망가고 싶지만 결국은 이해하고 화해하고 함께 같이 살아가게 되는 그런 존재죠."
한참 '흑산'에 대해 설명하던 오 씨가 갑자기 이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그러고 보니 전생에 내가 소도둑이고 니가 코끼리였나보다." 이들은 우정, 연극, 극단이라는 코끼리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10월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1544-5955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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