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의 김자동(79·사진) 회장은 22일 본보 기자와 만나 국군의 날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은 “1940년 9월 17일 임시 정부가 머물던 중국 충칭(重慶)에서 100명 정도의 병력으로 광복군이 창설됐다”며 “광복군은 일본군에 끌려간 한국인을 탈출시키고, 광복 직전 국내 침투부대를 양성하는 역할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던 독립운동가 지청천(1888∼1957년) 선생이 광복군 총사령관을 맡아 항일전을 이끌었다.
광복 직전 광복군은 700여 명으로 늘었고, 1945년 8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직전엔 중국 시안(西安)에서 한국 상륙을 위한 특수부대인 ‘정진대’의 2기생까지 배출했다.
현재의 국군의 날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1일 3사단 23연대 병사들이 강원 양양 지역에서 처음 38선을 넘어 북진한 것을 기념해 1956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김 회장은 “38선을 넘은 것도 의미 있겠지만 상하이 임정의 정규부대인 광복군 창설일을 국군의 날로 바꾸면 역사적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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