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이끌어 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대학원생 시절, 나는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을 읽고, 내 사랑의 ‘자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것 같다. 서양식의 사랑이 피그말리온 신화처럼 돌의 살을 파고 돌의 피를 마셔, 기어이 제가 가지고 싶은 여자의 형상을 새겨 넣는 행위라면, 남해 금산의 화자는 그저 사랑하는 여자가 거기 있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이 돌이 되어 버린다. 그러고는 바닷가에 홀로 남겨진다.》
시인은 모락모락 솟는 한 덩어리의 밥에서 치욕을 찾아내고 그 치욕이 뻑뻑한 사랑이라고 노래했다. 무리지어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사노라고 고백한다. 발톱 달린 감자가 튀어나오고, 돌에게 아이를 배게 하고, 흙이 게워 놓은 연둣빛의 젖무덤이 몸을 뒤척이는 세계. 그만큼 이성복의 시는 읽을수록 힘센 이미지가 기지개를 켜고, 그 이미지 밑에 극세사로 만든 거미의 집이 숨겨져 있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 것’에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에 관한 영감이 마음의 유전에서 콸콸 솟아났다.
부끄럽게도 대구에서 교직 제의가 있었을 때, 그 제의의 8할이 잡아당긴 것도 ‘대구’라는 지명이었다. 나는 그곳에 단 한 번 가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강의하러 간 5시간 정도가 평생 대구에 머무른 시간과 기억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내게 이성복 시인이 계신 곳이었다. 춘천이 오직 오정희 선생이 계신 곳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듯이, 대구는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그리하여 대구에서 나의 삶이 서서히 번져 가게 되었을 때, 마침내 그 인연의 끈이 선생님께 닿을 수 있는 날이 왔다. 2006년의 어느 겨울날, 대구 시내 술집에서 눈빛이 형형한 선생님을 뵈며, 그날 나는 이 우주가 간절히 원하는 것 한 가지 정도는 반드시 이루어 준다는 저잣거리의 속설을 깊이 믿게 되었다. 충만함과 불안이 뒤얽혀 나의 깊은 뿌리를 죄어 왔지만, 선생님과의 술자리는 예상외로 유쾌했고, 참으로 즐거웠다.
선생님께서는 일본 ‘노(能)’의 대가, 제아미(世阿彌)의 ‘풍자화전’에 빗대어 예술의 평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상하(上下)’의 예술은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것이요, ‘상중(上中)’의 예술은 후지 산의 정상에 눈이 살짝 덮인 풍광이요, ‘상상(上上)’의 예술은 컴컴한 신라의 달밤에 누런 해가 떠 있는 경지라. 무릇 예술은 아름답기만 해도, 지나치게 감정 노출이 심해도 자칫하다가는 초등학생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코찔찔이 수건이 되기 십상이니 주의할 것이요, 주머니에서 살짝 손수건이 삐져나오는 듯한 정서, 달밤에 해가 뜨듯 모순이 존재하는 예술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그 겨울 밤, 대구 시내 길모퉁이를 돌아가시는 선생님의 긴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즈 야스지로나 로베르 브레송 같은 영화감독을 살아생전 만났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하는 상상을 해 보았더랬다. 그리고는 좋아하실 것 같아 오즈의 ‘도쿄 이야기’와 브레송의 ‘무셰트’를 보내 드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친필 엽서에는 “보내 주신 DVD를 보았는데 마음이 복잡해졌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직도, 선생님이 왜 오즈나 브레송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지셨는지,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선생님을 생각하면, 하는 일은 죄다 가난해지고, 거꾸로 마음은 부자가 된다. 그 후론 감히 선생님께 전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의 시구대로,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이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이므로.
이성복 선생님. 선생님은 가끔 꿈에만 보이는 착한 것들의 이름. 깊은 밤이 열리는 말, 맨땅에 내리는 싱싱한 물고기, 마른 가슴에 스며드는 빗물, 늘 옷깃에 달고 다니고 싶은 사파이어. 차마 이 땅에 내리지 못하고 아직도 허공을 떠도는 눈송이들.
자전과 공전을 되풀이하는 궤도에서 이탈하여 낡은 기억의 거미줄을 찢고 기억의 푸른 먼지들을 털어 버리고 싶을 때, 나는 ‘남해금산’을 펼쳐 든다. 거기 언제나 선생님이 계신다. (생각하지, 사랑하지, 미워하지, 그리워하지… ) 마라. 선생님이 계신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심 교수도 영혼의 허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분”
이성복 시인의 시집 ‘남해금산’도 마찬가지다. 심 씨는 영화 ‘봄날은 간다’와 같이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강의할 때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설명할 때 이 시인의 작품을 수없이 낭독해 주었는데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이 시인의 사인을 받아 선물해 준 것이다.
심 씨는 “영화는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고 말한다. 영화는 컷 이미지의 모음이며, 그 이미지들이 만들어 내는 리듬은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는 것. 그는 “좋은 영화를 보면 한 편의 좋은 시를 만난 것 같다”고도 했다.
이성복 시인에게 심 씨가 ‘내 마음속의 별’로 꼽았다고 전하자 “한 영화잡지에서 심 씨가 대담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며 “심 씨는 나이가 70, 80세가 돼도 영원히 철들 수 없는, 영혼의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일 것 같다”고 말했다. 시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작가든, 독자든, 영화감독이든, 평론가든 모두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허기를 지닌 ‘동류’의 사람이라는 것.
심 씨가 보내 준 오즈 야스지로와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덕분에 맘이 복잡해졌다”고 말한 이유를 물었다.
“깊은 물 속에 뭔가 들어 있는데, 손을 집어넣어도 건져 낼 수 없는 기분 있잖아요. 영화나 시나 일부러 아름다운 것을 잡아내려고 할수록 시적 효과는 더 떨어져요.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압축하고 응축함으로써 더 풍부한 것들이 담아지는 것이지요.”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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