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클래식 기타의 명가(名家) '로스 로메로스'가 내한공연을 앞두고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휩쓴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23일 본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기타리스트 페페 로메로(63) 씨는 연신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내년에 창단 50주년을 맞는 '로스 로메로스'는 스페인출신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셀레도니오 로메로가 그의 세 아들인 셀린, 페페, 앙헬과 함께 구성한 세계적인 기타 4중주단. 이들은 미국 샌디에이고 시내에서 4km 떨어진 델마 지역의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아왔다.
"알래스카에서 공연을 하다가 로스앤젤레스에 산불 소식을 들었습니다. 21일 샌디에이고로 돌아와 보니 집은 불길에 포위되고, 교통이 통제돼 전쟁터보다 더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1996년 셀레도니오의 타계 후 '로스 로메로스'는 기존 멤버인 아들 셀린과 페페 외에 손자인 셀리노와 리토가 합류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35년 전 아버지가 지으셨던 집은 기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박물관이죠. 전 세계 장인들이 만든 클래식 기타 명기(名器)가 130여개가 보관돼 있어요. 그런데 경찰의 대피 명령으로 아버지의 친필악보와 기타 30여개 밖에 못 들고 나왔습니다."
산불 이후 로메로 가의 여섯 가족은 임시 대피소에서 함께 생활해왔다. 로메로씨는 "25만 명의 난민들이 생필품을 구하러 한꺼번에 몰려들어 화장실 이용이 어렵고, 도둑도 들끓고 있는 열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로스 로메로스'는 26일 제주 한라대 한라아트홀, 11월3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월드 글로리아센터에서 내한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산불 피해로 제주도 공연은 31일로 연기됐고, 서울 공연은 예정대로 열린다.
로메로 씨는 "무엇보다 한국의 맑은 가을하늘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 때보다도 한국방문에 대한 기쁨이 크다"며 "산불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팬들과의 약속인 만큼 꼭 지키겠다"고 말했다. 문의 02-440-9271~3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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