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조카 김민 씨, 뇌성마비 장애 딛고 시집 펴내

  • 입력 2007년 10월 30일 03시 02분


“어렸을 적 뒷산의 김수영 시비를 도화지에 옮겨 그리다가 어둑해져서야 내려오고는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민음사)를 낸 김민(39·사진) 씨의 회고다. 그는 ‘풀’ ‘거대한 뿌리’ 등으로 유명한, 한국 현대시사의 뛰어난 모더니스트이자 강렬한 현실참여 시인으로 꼽히는 김수영(1921∼1968)의 조카다.

“큰아버지(김수영)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고(김수영 시인은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 세상을 떴다) 큰아버지의 시집을 늘 봐 온 게 자연스럽게 저를 시의 길로 이끌었겠지요. 그렇지만 장애에 따른 앞날의 선택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던 조건에서 할 수 있었던 게 시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조산으로 인한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상황을 가리키는 얘기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불편한 몸으로 인해 꿈을 접으면서 시 창작을 하게 됐다는 김 씨는 “울림을 물감으로 그려내는 것과 글로 그려내는 것, 비슷하지 않은가”라며 시와 그림이 잇닿는 부분을 짚기도 했다.

도봉산 등산로 들머리의 김수영 시비에 새겨진 시 ‘풀’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풀이, 풀이,’ 하고 읽고 있으면 발밑의 풀이 바람 따라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고 돌아보는 그는 “그 고요하던 어스름 풍경이 내가 시를 쓰게 된 것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집에 실린 시 86편은 모두 1행시다. 일본의 하이쿠를 연상시키지만 한국 시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던 시적 유형이다.

문학평론가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세상살이의 이치나 그것의 본질을 보는 눈이 살아 있다”고 평했다. 김 씨는 “말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표현하려는 ‘울림’은 줄어들게 되니까 한 줄 시로 응축된 것”이라고 말했다.

“신체적인 불편이 있든 그렇지 않든 창작의 고통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시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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