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시장기능 불균형 정부가 바로잡아야”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잘되기 위해서는 나를 포함해 상위 10%만을 위한 신자유주의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다.”

2004년 번역된 ‘사다리 걷어차기’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장하준(44·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자신의 이론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최근 펴낸 그가 1일 바쁜 행보를 펼쳤다.

그는 오전 7시 반 서울 종로구 관훈동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제1회 관훈포럼에서 ‘한국 경제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한 뒤 11시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자신의 이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애착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학문에도 위계질서가 있다. 경제학에선 수리경제학과 게임이론이 맨 위고 맨 밑이 내가 전공한 개발경제학이다. 나는 경제학의 제일 하층민이다. 그러나 ‘네 이론은 경제학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학문의 다원성을 무시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학문세계에서도 주류라고 다 옳은 것이 아니다. 1960, 70년대엔 수리경제학이 비주류였다.”

영국 유수 대학의 교수인 데다 2003년 뮈르달상과 2005년 레온티에프상 수상으로 국제적 성가를 높였음에도 국내 학계에서는 자리를 잡을 수 없었던 그는 “학자가 세상에 맞춰 곡학아세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말로 자신감을 피력했다.

7월 영국에서 랜덤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5000부를 넘어섰고 내년 1월엔 ‘해리 포터’를 펴낸 블룸스버리 출판사를 통해 미국에서도 출간할 예정이다. 국내에선 연말까지 10만 부를 목표로 한다고 출판사 측이 설명했다.

장 교수는 관훈포럼 강연에서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3가지 이상 징후로 의대 지원의 과열화, 주차권 자동발매기와 이를 뽑아 주는 여직원의 공존, 영어 배우기 열풍을 들었다. 그는 이 현상들이 각각 고용 불안, 제조업 약화와 서비스산업의 비대화, 전문성 부족과 같은 시장의 역기능을 보여 준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야 하는 사회적 이익과, 직업적 안정성을 찾으려는 개인적 이익의 괴리가 발생했을 때 그 격차를 줄여 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직무 유기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도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시속 30km를 못 달리는 법”이라며 “한국 경제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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