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5일 그렇게 ‘기다리던’ 귀화증서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고혈압과 노년 백내장, 심장판막증 등으로 거동조차 불편해 천주교 무료 의료기관인 ‘성가복지병원’에 입원 중이기 때문이다.
1921년 3월 말레이 반도에서 태어나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1남 2녀를 둔 할머니의 고된 인생은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됐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1943년 일본군에 납치돼 싱가포르 수용소에서 전쟁포로로 노역 생활을 했다.
3년 뒤 할머니는 수용소에서 만난 한국인 근로자 조모 씨와 함께 부산을 거쳐 한국 땅을 밟았다. 할머니는 이듬해 전남 함평의 한 성당에서 조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혼인신고 없이 외국인 등록만 마쳤던 할머니는 수년간 조 씨와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1955년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서울로 올라가 지모 씨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전전하던 그는 1959년 지 씨의 처가 숨지자 지 씨의 아내로 살았다. 지 씨의 전처가 낳은 세 아들의 ‘의붓어머니’로 34년을 지낸 것.
막노동을 하는 남편 뒷바라지와 염색공장 일을 하며 의붓아들들을 정성껏 키웠지만 아들들이 분가를 하고 1992년 지 씨가 사망하자 할머니는 주한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 대사관을 찾았다. 국적을 되찾아 보려 했지만 ‘출생 기록이 현지에 남아 있지 않아 자국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평생을 써 온 ‘마리얌’이라는 이름은 국적을 찾지 못했고, 한국명으로 함께 적었던 ‘김순애’가 그의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런 사연이 한 방송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할머니는 올해 7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벌써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친자식 3명과 상봉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법무부가 10월에 마리얌 할머니의 귀화 결정을 내린 것.
법무부 관계자는 “할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게 돼 어떻게 귀화증서를 전달해 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