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이푸(林毅夫·56·사진) 중국 베이징(北京)대 교수가 세계은행 선임 부총재로 발탁될 것이 유력해지면서 그의 남다른 인생행로가 주목받고 있다.
린 교수는 중국의 개혁 및 개방 경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개발경제학의 최신 이론을 발표해 온 중국의 대표적 석학. 린 교수가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지명되면 서방 학자들이 주름잡던 국제 경제학계에 개발도상국 학자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런 린 교수도 대만에서는 탈영 및 적국 투항 혐의로 수배된 배신자일 뿐이라고 홍콩 언론이 전했다.
대만 이란(宜蘭) 현 출신으로 본명이 ‘린정이(林正誼)’인 린 교수는 국립대만대 재학 중 육군군관학교로 옮겨 ‘투필종군(投筆從軍·학문의 길을 버리고 군문으로 나아감)’의 모범으로 당시 대만사회에 화제가 됐다.
1978년 군의 지원으로 대만 정치대에서 기업관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같은 해 중국 푸젠(福建) 성과 면한 대만의 최전방 진먼(金門) 섬 주둔군의 소대장으로 파견됐다.
하지만 이듬해 5월 당시 린정이 상위(대위)는 대만군 병력배치도 등 기밀문서를 지니고 농구공 하나에 의존해 2.3km를 헤엄쳐 중국 대륙으로 건너갔다. 당시 대만군은 촉망받는 엘리트가 귀순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실종된 것으로 보고 가족에게 47만5000대만달러(약 2억 원)의 위로금을 지급했을 정도다.
그는 중국으로 망명한 뒤 린이푸로 이름을 바꾸고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다가 교환교수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시어도어 슐츠 교수의 지원으로 미 시카고대에 유학해 1986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일대에서 박사후 과정까지 마친 그에게 미국 대학들의 교수직 제의가 쏟아졌지만 1987년 과감히 귀국의 길을 선택해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후 1994년엔 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브레인으로 일하면서 중국의 대표적 경제 전문가로 주목받았다. 현재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경제고문이기도 하다.
망명 당시 그를 실종 사망처리한 대만군은 2002년에야 망명 사실을 확인하고 수배령을 내렸다. 결국 린 교수는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해 대만 방문을 신청했지만 대만 사회의 반대로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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