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원서동 소극장 ‘공간사랑’. 30년 전 하얀 농민복을 입고 북과 꽹과리, 징, 장구를 두들겨대던 더벅머리 총각들이 다시 뭉쳤다. 바로 ‘사물놀이’ 원년 멤버들이다. 이광수 씨의 구성진 구음 ‘비나리’로 시작된 10여 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원년 멤버의 솜씨는 조금도 녹슬지 않은 듯 장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여기도 참 많이 변했네요. 숨쉬기도 어려웠던 1970년대 후반 여기서 작은 문화운동이 시작됐죠.”(김덕수 씨) “당시 전통 예술이 문화재 지정으로 박제화되면서 아무 데서나 놀이를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소극장에서 암암리에 활동을 시작한 거죠.”(이광수 씨)
다음 달 6, 7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사물놀이 탄생 30주년 기념공연이 열린다. 김덕수(장구·56) 이광수(쇠·56) 최종실(북·54) 씨와 작고한 김용배(1953∼1986년) 씨를 대신해 남기문(50·징) 씨가 함께하는 공연이다. ‘원조 드림팀’ 멤버 3명이 한무대에 선 것은 14년 만의 일이다. 이들은 전국투어와 미주, 유럽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1984년 김용배 씨가 국립국악원으로 떠난 데 이어 최종실, 이광수 씨가 차례로 독립했다. 혼자 남은 김덕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씨는 사물놀이 한울림을 창단했다. 현재 최 씨는 중앙대 국악과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며 이 씨는 충남 예산군에 민족음악원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1978년 2월 28일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처음 태동한 사물놀이는 1982년 미국 댈러스에서 개최된 ‘세계타악인대회’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이후 월드뮤직 재즈 힙합 등 다른 나라의 장르와 교류해온 사물놀이는 타악 퍼포먼스 ‘난타’ ‘도깨비 스톰’의 원류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대영백과사전에 ‘사물노리안(samulnorian·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란 신조어가 등록되기도 했다.
이광수 씨는 “그동안 뿌린 씨앗이 ‘1세대 한류’를 만들었다. 이제는 그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며, 김덕수 씨는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풍물판제를 짜고 레퍼토리를 마련한다면 힙합, 재즈처럼 사물놀이도 ‘글로벌 음악’이 될 것”이라며 “전용극장과 연습 공간, 기념관 등을 갖춘 사물놀이 센터를 만들기 위한 기념사업회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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