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달 위를 걷는 듯 흥분의 나날”
이 작은 영화가 남긴 파장은 한 번(Once)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20일 국내에서 개봉한 아일랜드 음악 영화 ‘원스(Once)’는 관객 21만5000명을 돌파하며 아직도 상영 중이다. ‘원스’는 1억4000만 원의 제작비를 들인 저예산 영화지만 국내외에서 대박을 쳤다.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도 국내에서 4만2000장이 팔리며 팝 판매순위 1위로 올라섰다. 영화의 주제가 ‘폴링 슬롤리’는 올해 제80회 아카데미상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와 더불어 주인공 글렌 한사드(38)가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룹 ‘더 프레임스(The Frames)’도 주목받고 있다. ‘더 프레임스’는 1990년 결성된 아일랜드 출신 5인조 밴드.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의 여주인공이자 연인인 마르케타 이르글로바(20)와 머물고 있는 그를 e메일로 만났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영화 주제곡을 함께 부른다.
―영화의 성공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작은 영화가 해낸 일을 보면 믿을 수 없다. 달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 흥분된다. 영화 개봉 두 달 뒤 나는 미국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하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여섯 블록 정도를 걸었는데 걸음을 스무 번 정도는 멈춘 것 같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전해 줘 발을 뗄 수 없었다. 아카데미상 후보가 될 거라고 얘기할 때도 속으로 ‘난 절대 그런 일에 흥분하지 않을 거야’라고 되뇌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나는 더 바빠졌다. 마치 석탄을 캐듯 바쁘게 일하고 있다.”
―배우가 아닌데 영화에 출연했다. 어떤 계기였나. 영화의 많은 부분이 당신의 삶을 연기한 것 같다.
“맞다. 나도 ‘그’처럼 거리에서 노래했고, 청소기 대신 자전거를 고쳤고(그의 취미는 자전거 수리), 돈을 빌리러 찾아간 은행의 대출 담당자가 내게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다. 원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사람은 아일랜드 배우인 킬리언 머피였다. 감독인 존 카니는 거리에서 노래하는 것을 취재하러 나를 찾아왔을 뿐이다. 감독은 처음엔 영화음악 몇 곡을 부탁하더니 어느 날 주인공 역할을 제안했다. 처음엔 단호히 거절했지만 결국 참여했다. 투자되는 돈은 적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정말 무(無)에서 창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연기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고, 그것이 나를 편하게 해줬다.”
―아일랜드 더블린은 어떤 곳인가. 뮤지션들의 천국이라고 하는데….
“맞다. 더블린은 밴드들에는 건강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동네 출신 밴드들의 음악을 듣는 데 익숙하다. 또 열광적인 아일랜드 팬도 빠질 수 없다. 내가 알고 지낸 미국 밴드들은 아일랜드 관객이 세계 최고라고 말한다. 그 열정이 더블린의 음악을 풍성하게 만든다.”
―영화처럼 더블린 그래프턴 거리에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정말 많은가.
“난 10세 때 처음 기타를 손에 쥐었고 18세까지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느 날 젊은 시절 라디오 DJ 출신인 교장선생님은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방으로 불렀다. ‘넌 참 재미있는 아이구나. 넌 닐 영의 음반 베이스 연주자 이름도 댈 수 있고, 밥 딜런 앨범의 트랙리스트도 줄줄 꿰는데 9의 제곱근을 모르다니’라고. 그는 내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얘기하며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가 노래해’라고 용기를 줬다. 또 ‘네가 유명해질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넌 항상 기타로 인해 살 수 있게 될 것’이란 조언도 해줬다. 그는 옳았다. 나는 거리에서 음악에 대한 모든 걸 배웠다. 그런데 요즘 아일랜드에선 거리의 가수를 부랑자로 취급한다.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받는 것은 불법이다. 체포될 수도 있다.”
―이르글로바와 악기점 ‘월턴숍’에서 피아노를 치며 ‘폴링 슬롤리’를 부른 건 명장면이었다. 실제로도 그녀와 노래를 부르나.
“밴드가 체코에 공연하러 갔을 때 공연기획자였던, 이르글로바의 아버지를 만났다. 체코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이르글로바의 집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렀다. 이르글로바는 피아노를 쳤는데, 솜씨도 좋고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였다. 우리는 함께 곡을 만들었고 체코의 작은 카페나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그저 소박한 일상처럼.”
―영화 ‘원스’를 좋아하는 한국 팬들이 많다. 내한할 계획이 있나.
“아일랜드처럼 작지만 매우 훌륭한 나라로 알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영화를 봤다고 들었다. 일이 잘 풀려서 이번 여름 한국에서도 만나게 되길 바란다.”(‘더 프레임스’의 내한 공연은 국내에서 10여 개 기획사가 추진 중이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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