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권위를 지킨 언론 경영인…化汀 김병관 선생 영전에

  • 입력 2008년 2월 27일 03시 00분


화정 김병관(化汀 金炳琯) 선생에게 동아일보는 3대를 이어온 영광스러운 가업(家業)인 동시에 벗어 던질 수 없는 무거운 십자가였다. 창업주 인촌 김성수 선생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격동의 역사를 헤쳐 온 역사 깊은 신문의 운영을 책임지는 중압감에서 잠시라도 몸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00주년 가까운 연륜을 쌓는 동안 동아일보도 몰아치는 역사의 광풍을 피할 수 없었던 경우가 있었다. 운명의 상처가 남고, 과(過)가 없지 않았다 하더라도 신문은 민중의 대변자였으며 사회의 공기(公器)요, 목탁이었다. 식민지 치하의 압제와 광복 이후 권력의 탄압을 이겨내면서 수많은 인재를 포용하고, 길러내고, 배출하면서 나라가 나아갈 진로를 탐색하는 신문사를 경영하는 일은 결코 용이한 과업이 아니었다.

김병관 선생은 언론 탄압이 강화되던 시기,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권력이 언론을 노골적으로 용훼(容喙)하고 억압하던 무렵이다. 이해에 있었던 ‘신동아 사태’는 언론이 권력의 힘에 의해 굴복을 강요당해야 했던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권력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해오던 언론도 권력이 3선 개헌의 변칙 통과(l969년)와 유신헌법의 공포(1972년)를 강행하는 동안 고난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 탄압이라는 초유의 언론 탄압과 그 와중에 발생한 사내 갈등을 겪었던 화정 선생은 부친인 김상만 사장을 보필하면서 신문사의 최고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닦고 있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 불씨 지펴

1987년에 선생은 동아일보의 발행인이 되었다. 바로 그해 동아일보는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하여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언론사에 길이 기록될 사건이었다. 1989년에 마침내 사장에 취임하여 동아의 최고경영자가 되었고 1990년에는 한국신문협회 회장에 선출되어 전체 신문업계의 권익을 신장하고 언론 자유를 수호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1994년 김상만 회장의 타계 이후 김병관 선생은 동아일보의 모든 책임을 한 어깨에 짊어지는 위치에 서야 했다. 신문사 경영이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김병관 회장이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에 언론 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인쇄매체의 성장이 둔화되는 추세였으며 언론계 내부의 노사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었다.

언론자유 수호 위해 타협 거부

권력의 언론 탄압은 민주화 이후에 더욱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진화(進化)했다. 김대중 정권이 동아일보를 비롯한 특정 언론사를 표적으로 삼아 세무조사를 실시했을 때는 가족의 희생이 따르는 비극을 가슴에 안아야 했다. 2001년의 세무조사와 검찰의 수사를 받는 고통과 수모를 당하던 7월에는 부인 안경희 여사가 목숨을 끊어야 했을 정도로 언론사의 경영은 가족의 안위를 보장하기 어려운 위험이 따르는 필사의 과업이었다.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기 어려운 희생을 치르고 탄압을 겪어야 하는 사태가 민주화된 21세기에 김병관 회장에게 닥쳤던 것이다. 권력의 편에 서서 탄압받는 신문을 매도하는 언론도 있었다. 언론계 내부의 분열은 권력을 향한 저항을 약화시켰다. 그런 가운데 경영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언론 자유의 수호를 위해 후퇴와 타협을 거부했다. 민족사학 고려대학교의 이사장을 맡아 학교 발전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김병관 선생의 업적을 여기에 모두 나열할 수는 없다. 청계천의 물길이 시작되는 세종로에 우뚝 선 동아미디어센터는 그를 기리는 상징적인 기념탑이 되어 있다. 저녁 시간이면 미디어센터는 서울에서 발행되는 여러 신문 보급소의 집합소로 개방되고 있다. 한국 신문의 초판이 가장 먼저 모이는 장마당을 김병관 회장이 펼쳐놓은 것이다. 동아미디어센터는 동아일보 사옥이라는 기능을 뛰어넘어 미디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하고 21세기 정보 커뮤니케이션의 바람직한 앞날을 열어갈 중심 공간을 지향하는 그의 유지를 구현할 건물이 되어 있다.

김병관 선생은 동아일보의 전통과 명예를 지킨 경영인이자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면서 신문을 통해 이 땅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자였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사


▲ 영상취재 : 동아닷컴


▲ 영상취재 :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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