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 평사원부터 대표이사까지, 그리고 다시 새 증권사 창업자로.’
손복조(57) 전 대우증권 사장의 행보(行步)가 증권업계에서 관심사다.
1984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기획실장, 자금담당 상무 등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대우사태’ 이후인 2000년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2004년 6월 대표이사로 화려하게 복귀해 “대우증권 직원으로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자”며 직원들을 독려해 업계 4, 5위였던 회사를 3년 만에 1위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5월 대우증권 사장 연임에 실패한 뒤 일부에서는 “과거 영업행태인 주식 위탁매매에만 매달려 실적을 올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취임 당시 1조 원이던 자기자본을 2조 원대로 끌어올린 뛰어난 성과는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이달 초 손 전 사장이 새 증권사를 세운다는 소식이 증권업계에 전해졌다.
○ 대우증권과 경쟁 싫어 타 증권사 영입 제의 거절
서울 종로구 적선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손 전 사장은 “금융당국의 설립 인가를 받으면 7월경 영업을 시작할 것”이라며 계획을 소개했다.
그는 “그동안 ‘경쟁 증권사’의 영입 제의가 적지 않았지만 대우증권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거절했다”면서 “그 대신 대우증권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새 증권사를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 사업을 위해 평생 모은 재산 대부분(30억 원)을 털어 넣었다. 대구은행, 전북은행 등이 투자에 합류했으며 그의 ‘이름’을 믿고 투자하려는 지인(知人)들도 몰렸다. 자본금 300억 원은 이렇게 어렵지 않게 모았다.
손 전 사장은 우선 직원 60∼70명의 소수 정예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정통 증권업 분야에서 승부를 걸 계획이다. 그는 “주식, 채권중개, 매매 같은 분야는 능력 있는 직원과 인맥만 갖추면 얼마든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말부터는 금융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관리 영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자산관리’가 고객에게 수익증권 등 금융상품을 파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면서 “고객 자산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결정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세금, 상속 등의 문제까지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10~20년 안에 국내 1위 증권사로 키우는 게 목표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증권사들이 대형화돼 소형 증권사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란 전망에 대해 그는 다른 진단을 내놨다. 손 전 사장은 “이제까지 대형 증권사가 출현하지 못한 이유는 인수합병이 이뤄지기 힘든 증권사의 지배구조 때문”이라며 “자통법이 통과돼도 갑자기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0∼20년 안에 국내 1등 증권사를 키워 내겠다는 강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제조업과 달리 금융업은 경쟁력만 갖추면 짧은 기간에도 얼마든지 고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손 전 사장은 “1986년 자기자본 100억 원대였던 대우증권이 1991년까지 1000억 원 규모로 성장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비웃었다”며 “하지만 대우증권의 자기자본은 1989년 이미 1조 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별자리 가운데 ‘황소자리’를 뜻하는 ‘토러스(Taurus)’를 신설 증권사의 이름으로 정했다. 주식시장에서는 황소처럼 힘차게 주가가 오르는 강세장을 ‘불(bull) 마켓’이라고 부른다.
손 전 사장은 “사장 연임에 실패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삶의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토러스를 키워 나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