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년 인연’ 딸이 영화로 제작”
28일 89번째 생일을 맞는 브루스 테일러 씨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자신이 태어나고 소년 시절을 보낸 ‘고향’ 서울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지금은 태평양 반대편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휴양도시 멘도시노에 살고 있지만 그는 대한제국 말 고종 황제가 승하한 직후인 1919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와 한국의 인연은 태어날 때부터 극적이었다. 3·1 독립선언문을 이부자리 삼아 세상과 첫 만남을 가졌던 것.
27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고종 황제의 장례식 준비를 취재하고 한걸음에 병원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갓 태어난 나를 들어 올렸을 때 침대 밑에는 독립선언문이 있었다. 선언문을 입수해 아버지에게 전달하려 한 간호사가 일본 순사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일러 가문이 한국과 맺은 인연은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 조지 테일러는 1897년 이주해 당시 고종 황제의 집무실에 전기를 부설했고 이를 계기로 평안북도 운산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동양합동광업회사를 설립했다.
1908년 사망한 그를 대신해 사업을 떠맡은 앨버트는 사업을 계속 확장해 1919년 충남 천안에 또 다른 금광을 소유했다.
브루스 씨는 “3·1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 사진을 접한 아버지는 일제의 만행에 크게 분노했다. 언더우드 목사, 커티스 부총영사 등과 함께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당시 총감을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한 뒤 양민학살 중단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과 적대국이 된 일본은 미국인들을 조선에서 추방하기 시작했고, 1941년 테일러 가족도 삶의 터전인 한국을 떠나야 했다.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금광사업도 잃고 시름에 잠겼던 앨버트는 194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브루스 씨는 “아버지는 ‘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나를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며 “어머니는 한국에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10월 한국을 찾아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 줬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9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던 브루스 씨가 서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무려 65년이 지난 2006년 2월이었다. 그 사이 브루스 씨는 미군에 입대해 2차 대전을 치렀으며 영국으로 유학한 뒤 부인 조이스 씨와 결혼했고 30여 년간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브루스 씨는 “65년 만에 본 한국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발전을 이뤘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이 너무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은 갈 수 없는 반도의 북쪽에도 이 같은 축복이 미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브루스 씨의 한국 사랑은 자신의 딸인 제니퍼 씨에게 이어져 4대째 내려오고 있다. 그는 할머니 메리 씨가 서울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 ‘체인 오브 앰버’를 시나리오 삼아 테일러 가문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