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없는 국제미아 보듬은 총영사

  • 입력 2008년 3월 18일 02시 58분


2004년 크리스마스이브였던 12월 24일. 주상하이(上海) 부총영사였던 김선흥(사진) 주칭다오(靑島) 총영사는 갓 돌이 지난 여자아이와 만났다.

한 중국인 보모가 “한국인 엄마가 아이를 두고 종적을 감췄으니 한국 정부가 키워 달라”며 아이를 총영사관에 두고 갔기 때문.

돌 지난 아이를 보육원에 보낼 수 없었던 김 총영사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가 될 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에겐 국적이 없어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총영사는 ‘크리스천 앤드리언 김’이란 필리핀식 이름이 적힌 A4 용지 한 장짜리 출생신고서를 들고 친부모 찾기에 매달렸다.

2003년 10월 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난 이 아이의 어머니는 중국에 임시 체류하던 한국인이었다. 아버지는 필리핀인 노동자였다. 어렵게 친어머니 쪽에 연락을 할 수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 총영사 부부는 입양을 결심했다.

이후 넉 달 동안 김 총영사 부부에겐 고단한 나날이 이어졌다. 국제미아인 아이에게 여권이 있을 리 없었고, 여행증명서 없이는 바깥출입이 불가능한 중국 사정상 아이 때문에 김 총영사 부인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다.

서울의 대법원과 사회복지재단에 수십 차례 문의를 했지만 ‘국제미아를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생각다 못한 부부는 대한민국 실정법을 어기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에 호소해 아이의 여권을 발급받았다. 아이를 데리고 귀국한 김 총영사의 부인은 동사무소를 찾아가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늦은 출생신고를 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남편이 속을 많이 썩였네요”라며 동정했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로 여긴 것이다.

김 총영사는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공무원이 실정법을 어긴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거절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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