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국화장품 인왕대리점에서 ‘쥬단학 뷰티매니저’로 3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김영순(81) 씨. 전국 3000여 명의 쥬단학 뷰티매니저 가운데 단연 최고령이다.
김 씨는 매일 오전 9시 반이면 대리점에 출근해 전날 활동을 보고한다. 이어 화장품 가방 하나는 등에 지고 하나는 손에 들고 고객들을 찾아 나선다. 퇴근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오후 8시든, 9시든 내가 목표로 한 판매량을 채우기 전에는 퇴근 안 혀. 고객이 부르면 일요일에도 나가야지. 놀면 나만 손해인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는 방문판매원의 특성상 김 씨에겐 정년이 없다. 김 씨가 ‘관리’하는 단골고객만 100여 명. 고객이 지방으로 이사 가면 그곳까지 따라가 관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일해 그가 올리는 매출액은 월평균 500만 원, 손에 쥐는 돈은 매달 260만 원 정도 된다.
“나이 제한 없는 평생직장에다 내가 노력한 만큼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고객들이랑 커피 마시고 웃고 하니까 아플 틈이 없어.”
1927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김 씨는 일본군위안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17세에 신랑을 맞았다. 일본으로 징용을 갔던 남편은 광복 직후 돌아와 착실히 직장을 다녔다. 영어를 잘했던 남편은 6·25전쟁이 일어난 뒤 미군부대에서 일하며 월급도 쏠쏠히 갖다 줬다.
“영감이 언제부터인지 일도 안 하고 밖으로만 돌더라고…. 집안이 형편없었지. 45세 때쯤인가, 4남매 먹여 살리려고 당시 돈으로 100원을 빌려서 창피를 무릅쓰고 동대문으로 나갔어. 이것저것 안 판 게 없었지. 그러다 49세 때부터 화장품을 팔기 시작한 거야.”
그가 화장품 방문판매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저세상으로 갔다. 더 억척스러워진 그는 2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화장품을 팔러 다녔다.
현재 김 씨의 큰아들은 사업을 하고 둘째 아들과 두 사위는 대기업 간부다. 여기에 강아지 같은 손자 손녀가 올망졸망 9명. 남부러울 것 없는데 이제는 쉬고 싶지 않을까.
“자식들은 그만두라고 난리야. 그래도 집에서 놀면 뭐 혀, 자식들 부담만 주지. 아이고, 내가 정신 빠졌어? 자식들한테 기대게…. 직접 벌어서 손자 손녀 용돈 주고 며느리들 화장품도 주고 얼마나 좋아. 힘이 다할 때까진 일할 거여.”(웃음)
김 씨는 매일 스킨과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영양크림, 선크림을 꼼꼼히 챙겨 바르고 파우더와 립스틱까지 곱게 칠한다.
“사람 상대하는 직업인디 꾸미고 다녀야지…. 늙을수록 가꿔야 혀!”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