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현역 뷰티매니저 할머니 “놀면 뭐해, 일해야지”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02분


화장품 방문판매원으로 30년 넘게 일해 온 한국화장품 인왕대리점 김영순 씨.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그는 ‘힘이 다할 때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화장품 방문판매원으로 30년 넘게 일해 온 한국화장품 인왕대리점 김영순 씨.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그는 ‘힘이 다할 때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현실인 요즘 팔순이 넘은 나이에 화장품 방문판매원으로 왕성하게 현장을 뛰는 할머니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국화장품 인왕대리점에서 ‘쥬단학 뷰티매니저’로 3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김영순(81) 씨. 전국 3000여 명의 쥬단학 뷰티매니저 가운데 단연 최고령이다.

김 씨는 매일 오전 9시 반이면 대리점에 출근해 전날 활동을 보고한다. 이어 화장품 가방 하나는 등에 지고 하나는 손에 들고 고객들을 찾아 나선다. 퇴근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오후 8시든, 9시든 내가 목표로 한 판매량을 채우기 전에는 퇴근 안 혀. 고객이 부르면 일요일에도 나가야지. 놀면 나만 손해인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는 방문판매원의 특성상 김 씨에겐 정년이 없다. 김 씨가 ‘관리’하는 단골고객만 100여 명. 고객이 지방으로 이사 가면 그곳까지 따라가 관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일해 그가 올리는 매출액은 월평균 500만 원, 손에 쥐는 돈은 매달 260만 원 정도 된다.

“나이 제한 없는 평생직장에다 내가 노력한 만큼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고객들이랑 커피 마시고 웃고 하니까 아플 틈이 없어.”

1927년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김 씨는 일본군위안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려고 17세에 신랑을 맞았다. 일본으로 징용을 갔던 남편은 광복 직후 돌아와 착실히 직장을 다녔다. 영어를 잘했던 남편은 6·25전쟁이 일어난 뒤 미군부대에서 일하며 월급도 쏠쏠히 갖다 줬다.

“영감이 언제부터인지 일도 안 하고 밖으로만 돌더라고…. 집안이 형편없었지. 45세 때쯤인가, 4남매 먹여 살리려고 당시 돈으로 100원을 빌려서 창피를 무릅쓰고 동대문으로 나갔어. 이것저것 안 판 게 없었지. 그러다 49세 때부터 화장품을 팔기 시작한 거야.”

그가 화장품 방문판매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저세상으로 갔다. 더 억척스러워진 그는 2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화장품을 팔러 다녔다.

현재 김 씨의 큰아들은 사업을 하고 둘째 아들과 두 사위는 대기업 간부다. 여기에 강아지 같은 손자 손녀가 올망졸망 9명. 남부러울 것 없는데 이제는 쉬고 싶지 않을까.

“자식들은 그만두라고 난리야. 그래도 집에서 놀면 뭐 혀, 자식들 부담만 주지. 아이고, 내가 정신 빠졌어? 자식들한테 기대게…. 직접 벌어서 손자 손녀 용돈 주고 며느리들 화장품도 주고 얼마나 좋아. 힘이 다할 때까진 일할 거여.”(웃음)

김 씨는 매일 스킨과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영양크림, 선크림을 꼼꼼히 챙겨 바르고 파우더와 립스틱까지 곱게 칠한다.

“사람 상대하는 직업인디 꾸미고 다녀야지…. 늙을수록 가꿔야 혀!”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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