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크룩.”
대통령 경호원 윌리엄 크룩은 잠시 귀를 의심했다. ‘굿 바이(안녕히)라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항상 ‘굿 나이트’라고 인사했다. ‘굿 바이’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링컨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밝았기에 크룩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퇴근했다.
이날 저녁 링컨의 연극 관람 경호는 크룩과 교대한 존 파커의 몫이었다. 그러나 1865년 4월 14일 링컨이 워싱턴 시내 포드극장에서 암살범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던 순간 파커는 인근 살롱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대통령이 착석하고 연극이 시작되자 ‘평소처럼 별일 없겠지’라고 여기고 만 것이다.
링컨은 당시 여러 차례 암살 경고를 받았지만 농담 정도로 치부했다. 보디가드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닷새 전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해 전쟁도 끝나가는 터에 두려워할 일이 있겠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날 포드극장으로 가기 직전 비밀검찰국(Secret Service) 설립안에 서명하면서도 링컨은 비밀검찰국이 훗날 대통령 경호조직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가 설립을 승인한 비밀검찰국은 위조지폐범을 잡으려 만든 재무부 산하 수사기구였다.
당시 미국의 화폐는 각 주의 개별 은행에서 발행했다. 화폐 종류가 많다 보니 전체 화폐의 3분의 1 이상은 위폐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해 6월 5일 공식 활동에 들어간 비밀검찰국은 1년 만에 위폐 공장 200개를 폐쇄시키는 성과를 냈다.
물론 링컨 암살 직후부터 의회 내에선 ‘대통령 경호 업무까지 비밀검찰국이 추가로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비밀검찰국이 경호 업무를 맡기까지는 36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매킨리 등 대통령 둘이 더 암살됐다.
1901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시작된 비밀검찰국의 경호 업무는 1917년 대통령 가족에게로, 1951년 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까지로 계속 확대됐다. 1968년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 뒤엔 대선 후보 경호까지 맡게 됐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비밀검찰국은 더욱 바빠졌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후보는 지난해부터 비밀검찰국 경호를 받고 있다. 사설경호에 의존하던 존 매케인 후보도 최근 정부에 경호를 의뢰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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