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영어 한다면서 美래퍼 에미넘도 모르면 안되죠
메마른 땅에서 갈대를 만난 기분이다.
“오셨군요.”라는 무미건조한 인사만 건넨다. 5분 간 묵묵히 하던 일(라디오 녹음 뒷정리)을 계속 했다. 제대로 된 인사는커녕 악수 한 번 나누는 것도 인색하다. 허연 머리와 코 밑에 앉은 흰 수염은 그를 더욱 건조하게 만드는 듯했다.
18일 오후 배철수(55)는 여전히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문화방송(MBC) 7층 라디오국에 있었다. 매일 오후 6시 그가 청취자들을 만나는 MBC 팝 전문 라디오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 스튜디오. 이곳을 지킨 지도 벌써 18년째다. 그의 뭉툭한 두 손이 하는 일도 18년째 똑같다. 한 손은 오늘 방송에 내보낼 CD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또 다른 손은 라디오 원고로 보이는 A4용지를 넘기고 있었다. 어디든 기자가 끼어들 곳은 없어 보였다. ‘푸대접’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 순간 그는 ‘배철수 표’ 웃음을 보이며 얘기했다.
“헤헤헤, 자, 이제 합시다!”
‘영희’만큼이나 친숙한 이름이지만 그는 쉽사리 너털웃음을 보이지 않는다. 18년 동안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진행한 현존하는 유일한 팝 전문 라디오 DJ.
KBS1 TV 프로그램 ‘콘서트 7080’을 진행하는 MC로, 또 그 자체로 7080 문화의 아이콘인 그다. 이와 함께 1980년대 인기 록 밴드 ‘송골매’를 이끈 날갯죽지로서 그를 인터뷰하려 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그는 손사래를 쳐왔다.
하지만 기자와의 인연을 알고 난 후 그는 마음을 열었다. 10년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청취자가 일일 DJ로 참여하는 ‘사람과 음악’이란 코너에 기자(당시엔 대학생)는 출연했다. 그는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는 말을 끝인사로 건넸다. 물론 이 사실을 10년이 지난 지금 그가 기억할 리는 만무할 터다.
“헤헤헤, 내가 청취자 한 분을 키웠군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렇게 4년 만의 첫 인터뷰가 진행되나 싶었지만 마지막 ‘딴지’가 이어진다.
“가족 얘기나 내 사생활에 대해선 묻지 맙시다.”
○ 오해와 진실 #1… 까칠한 DJ 철수씨?
―브리트니 스피어스만큼은 아니겠지만 최근에는 스타의 사생활도 인기를 올리는 전략인데 굳이 그걸 감추려는 이유는 뭔가요?
“어, 그건 방송이나 음악 얘기만 하고 싶어서 그렇죠. 딱히 할 얘기도 없고 억지로 하고 싶지도 않고….”
―방송에서의 털털한 모습과 달리 깐깐한 면이 보여요.
“학창 시절 스스로 ‘마지막 히피족’이라 할 정도로 히피문화에 탐닉하다 보니 지금도 세상을 약간 삐딱하게 보는 버릇이 있죠. 하지만 소박하다고 할까요? 전 요즘 다른 사람들이 원대한 포부나 희망을 꿈꾸는 걸 보면 왜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지…. 전 할 만큼 다 했다고 생각해요. 은퇴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도 드는 거 있죠.”
―그건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요? 박원웅, 김기덕, 이문세 같은 인기 DJ들도 결국 ‘끝’을 봤잖아요.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올해로 18년째니 언젠간 끝날 텐데….
“말하자면 ‘알찬 마무리’에 대한 강박 관념이겠죠. 18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팝 전문 프로그램으로 정체성을 지켜왔는데 예기치 않게 물의를 빚는, 아주 속된 말로 ‘만신창이’ 끝맺음은 싫어요. 그보다 지금은 어릴 적 꿈이었던 세계일주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헤헤헤….”
스스로 ‘소박하다’는 그의 입에서 세계일주 얘기가 나왔다.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식의 ‘위협’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18년간 방송을 펑크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목청을 높였다.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라디오 스타’처럼.
록 음악밖에 몰랐던 ‘히피’족이 털털한 방송인으로 거듭난 것은 우연과도 같았다.
1990년 어느 날 동갑내기 PD에게서 “라디오 DJ 해보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받은 그는 과거 아픈 기억(데뷔 초 라디오 DJ를 했다가 진행을 너무 못한다며 6개월 만에 하차한 적이 있음)을 씻기 위해 재도전을 결심했다. 동료가수 김수철이 골라준 시그널음악(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롤링스톤스’의 ‘새티스팩션’)으로 1990년 3월 19일 첫 방송을 탔고 그렇게 18년간 그는 저녁시간 ‘퇴근길의 인기 DJ’가 됐다. 1991년에는 당시 이 프로그램의 PD였던 박혜영 씨를 아내로 맞아들여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장수비결은 준비성에 있다. 매일 생방송 1시간 전부터 스튜디오에 들어와 그날 방송될 음악을 미리 다 듣는다. 그렇게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듣다가 그는 얼마 전 대형 사고를 저질렀다. 아무런 말없이 헤드폰으로 음악만 듣다가 6시 생방송 시간을 20초나 넘긴 것이다. 그것만 빼면 비교적 순탄하게 18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가 문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팝이 가요에, 연예인들의 입담에 밀려 어느덧 그의 프로그램만이 팝 프로그램으로는 유일하게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화를 외치며 너도나도 영어 공부를 하는데 ‘비틀스’나 에미넘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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