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5월 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챈슬러즈빌에서 전투가 벌어져 남군이 승리했다.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 속에서도 대담한 측면공격을 감행한 남군 로버트 리 장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북군의 패장 조지프 후커 장군의 얼빠진 처신이 없었다면 결과는 딴판이었을 것이다.
챈슬러즈빌 전투는 후커가 몇 개월 동안이나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승부수였다. 후커의 북군은 병력이 2.5배나 많았고 이미 적정을 샅샅이 파악해 남군을 3면에서 포위한 상황이었다. 남군은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였다.
하지만 5월 2일 저녁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전장에 처음 도입된 최첨단 전신장비 ‘비어즐리 머신’이 먹통이 됐다. 점과 선(―)으로 이뤄진 모스 부호 대신 알파벳으로 교신할 수 있는 첨단장비가 울퉁불퉁한 길을 마차로 달린 탓에 배열이 흐트러졌으나 수리할 전문 인력이 없었다.
북군에는 공중에서 적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관측기구도 있었지만 이마저 무용지물이 됐다. 300m 높이에 밧줄로 매달아 놓은 기구가 갑작스러운 돌풍에 수평으로 누워버린 탓이었다.
잇단 악재에 후커는 갑자기 암흑 속에 갇힌 듯 당황하기 시작했다. 순간 노도처럼 밀려오는 남군의 함성이 들려왔지만 후커의 두뇌는 이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였다.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흔히 내리는 결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후커는 “진지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참모들은 일제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승산이 있다”며 돌격 명령을 내릴 것을 주장했다.
그 순간, 포탄 한 발이 날아와 후커가 기대 서 있던 현관 기둥에 맞았다. 무너지는 기둥에 머리를 맞은 후커는 충격으로 기절했다. 잠시 뒤 휘청거리며 일어난 후커는 “아직 내가 사령관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남북전쟁을 전공한 윌리엄 포스첸 박사는 ‘전투에서 지는 법(How to Lose a Battle)’이란 책에서 “당시 후커는 뇌진탕 후 건망증세를 보인 게 분명하다”며 “참모 중 누군가 후커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한 대 갈기고 지휘권을 뺏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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