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허물은 내가 잘못 가르친 탓” 당신의 종아리 때리시던 선생님!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8분


팔순의 이열 선생님(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경남 마산 월포초등학교 제자들과 52년 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956년 당시 6학년 여학생반을 지도했던 장병찬 선생님(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도 자리를 함께했다. 변영욱 기자
팔순의 이열 선생님(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경남 마산 월포초등학교 제자들과 52년 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956년 당시 6학년 여학생반을 지도했던 장병찬 선생님(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도 자리를 함께했다. 변영욱 기자
6·25직후 마산 판자촌 학교 출신들, 백발 되어 팔순의 은사 찾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종아리 걷어.”

선생님의 불호령에 교실은 이내 적막에 휩싸였다. 학생들은 책상 대용으로 쓰던 판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종아리를 걷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처음 치른 일제고사 성적이 저조해 다들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선생님이 교탁 밑에서 회초리를 꺼내들자 학생들은 올 것이 왔다는 듯 눈을 감았다.

5분여의 침묵을 깬 것은 선생님이 매 맞는 소리였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공부하고 싶도록 만들지 못한 건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며 자신의 종아리를 때렸다. 매질은 회초리가 부러져서야 끝났다. 선생님의 종아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흰 양말이 빨갛게 물들었다.

6·25전쟁 직후였던 1956년 4월, 전쟁고아와 이북 출신 피란민 자녀가 태반이었던 교실은 침묵에 잠겼다.

경남 마산 월포초등학교 6학년 담임 이열(83) 선생님은 그렇게 시골 판자촌 학교에 기적의 씨앗을 심었다.

변변한 교실 한 칸 없이 흙바닥에서 종아리를 걷었던 졸업반 60명 중 20여 명은 명문 마산중(당시 마산서중)에 입학했고 의사, 교수, 장군으로 성장했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민성길(64)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조용민(64) 교수, 부산 고신대 의대 산부인과 유길준(64) 교수, 2군 부사령관을 지낸 김종화(64) 예비역 육군소장 등이 그들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백발의 제자들은 14일 팔순의 은사를 다시 만났다. 52년 만의 재회다.

선생님은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이날 오후 마산에서 기차로 상경했다. 허리는 굽었지만 선생님은 제자 8명의 얼굴을 일일이 어루만지며 “이 녀석들 얼굴은 다 그대로네”라고 말했다.

민 교수 등이 이 선생님과 다시 연락이 닿은 건 3년 전 마산에서 열린 동창회가 계기였다. 선생님에 얽힌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마침 옆자리에 있던 이 선생님의 장남이 제자들을 알아봤다. 제자들은 곧바로 찾아뵈려 했지만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의 품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학생의 허물은 선생의 잘못’이라는 이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36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 지난해 퇴임한 정창봉(64) 씨는 “선생님이 그랬듯 나도 매를 들어야 할 땐 먼저 내 손바닥을 10대 때린 뒤 아이들을 5대씩 때렸다”고 말했다.

교수님보다 선생님으로 불릴 때 훨씬 뿌듯하다는 민 교수도 강단에 설 때면 늘 은사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학생들에게 실망할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돼요. 가르치는 일이 곧 배움이라는 게 선생님의 뜻이었나 봐요.”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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