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봉 아마 7단이 손에 쥐고 있던 바둑돌의 개수가 승부를 좌우하게 됐다. 치열하게 진행된 패싸움 탓에 사석이 많아 계가를 하자 반상의 집은 모두 메워졌기 때문. 그가 바둑판 옆에 주르륵 내려놓은 백돌은 7개. 덤 6집반을 제하고 그가 반집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하 7단은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29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의 궈위정(國宇征) 7단에게 363수 만에 흑 반집승으로 5연승을 거뒀다. 앞서 일본 선수를 꺾은 그는 이 대국 승리로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70개국 가까이 참석하지만 실력상 우승자는 한중일 3국 기사 중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8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하 7단은 불운한 기사다. 1999년 아마 대회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뒤 아마국수전 등 공식기전만 27번 우승했고 이번에 세계아마정상까지 오른 그가 불운하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프로가 되지 못했다. 될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다.
한국기원 연구생 시절 입단 시한인 만 18세를 몇 달 앞두고 1조에서 3조로 떨어졌다. 극심한 좌절 속에서 그는 무일푼으로 가출했다. 서울 시내 기원에서 판당 1000원짜리 내기바둑을 둬 입에 풀칠을 하며 한 달 반을 보냈다. 결국 아버지에게 발각된 그는 마음을 정리하고 아마의 길로 나섰다.
그는 “1000원짜리 내기를 둘 때만큼 독하게 바둑을 둔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2004년 아마국수전 우승으로 세계아마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받아야 했다. 당시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 특별 입단을 시켜줬다. 하지만 2003년 세계대회가 열리지 않는 바람에 2003년 아마국수전 우승자인 이강욱 7단(당시)과 세계대회 티켓을 놓고 다퉈야 했다. 그는 졌고 이 7단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해 입단했다.
그리고 지난해 아마국수전에서 다시 우승해 티켓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국기원이 ‘세계대회 우승=자동입단’ 규정을 바꿔버렸다.
“한국기원이 좀 더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 연구생에서 퇴출되는 기사들은 10여 명입니다. 이들은 바둑 기술적인 면에선 프로기사 못지않죠. 그런 바둑 인재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을 막는 건 바둑계 발전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는 연구생에서 퇴출된 후배들 걱정을 하며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세계아마대회에서 우승하면 프로기사 면장을 주진 않더라도 1∼2년간 프로 기전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일정 승률이 넘으면 심사를 거쳐 입단시키는 방안 등이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들은 초반에 반짝하다가 2∼3년이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10년간 꾸준히 아마 정상을 누비고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바둑 두는 태도와 시각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초기엔 무조건 이기려고만 들었죠. 어느 해엔 3개의 대회 준결승에서 반집패만 세 번을 당해 바둑 자체에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바둑 한 수 한 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자체가 즐거워졌어요. 승리보다 내가 놓은 돌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더 기쁘게 된 거죠. 이후 바둑이 여유로워지고 승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는 불운의 응어리를 긍정의 힘으로 풀어버린 것 같았다.
10년이 지나도 왜 프로 무대에 서고 싶은 걸까. 아마 정상으론 만족하지 못할까.
“바둑판 위에 내 혼과 정신을 모두 쏟아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둑으로 나를 불사를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한 거죠.”
▶1999년=제1회 인터넷아마국수전 ▶2000년=가로수닷컴배, 서울시장배, 지송배 ▶2001년=정맥배 아마명인전, 서울시장배, 아마대왕전 ▶2002년=아마최고위전, 서울시장배(3연패), LG카드배 아마기왕전 ▶2003년=배달바둑한마당, 아마국수전 ▶2004년=전국체전, 덕영배 ▶2006년=서울시장배 ▶2007년=건화배, 아마국수전 ▶2008년=세계아마바둑선수권전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