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박사는 서울대 사범대 생물교육과를 졸업하고 캔자스 주립대와 예일대를 거쳐 1964년 도쿄대에서 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인은 1955년부터 1986년까지 이화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학교를 떠난 후에도 연구를 계속해 국내에 자생 중인 150여 종의 식물을 최초로 발견했다.
한국식물학회 회장,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식물학계를 이끈 고인은 고령에도 최근까지 직접 채집을 다녔던 ‘현장형’ 연구자였다.
2006년에는 86세의 고령에도 자신이 펴낸 ‘한국식물도감’을 10년 만에 개정해 800여 종의 한국 식물을 새롭게 추가했다.
당시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제자들이 축하 파티를 하자는 것을 10년 뒤인 2016년에 개정판을 낼 때 하려고 미뤘다”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보였다.
▶본보 2006년 10월 12일자 A28면 참조
제자인 여성희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선생님께서는 5월 쓰러지시기 전날까지도 동강 지역으로 채집을 갔다 오실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셨다”고 말했다.
국립생물자원관 박종욱 관장은 “전국 어디서라도 새로운 식물이 발견됐다고 하면 바로 달려가실 정도로 발로 뛰어다니셨다”며 “식물 분류학계의 큰 별이 졌다”고 아쉬워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정원 씨와 장남 원세(사업) 씨, 차남 관세(에너지관리공단 직원) 씨, 3남 현세(전 대구시향 상임지휘자)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5호, 발인 24일 오전 8시 02-3410-6915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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