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com]스위스 명품시계 ‘태그 호이어’ 바빈 CEO

  • 입력 2008년 7월 11일 02시 59분


1만분의 1초까지 측정

‘꿈의 시계’가 다음 목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카페에 ‘바늘’ 같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희끗희끗한 짧은 머리, 날렵한 턱선, 빨간색 안경… 날카로운 이미지의 이 남자는 탄산수 두 병을 시키자마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건배!”

“탄산수를 좋아해요. 열이 많아서 그런지 탄산이 목으로 넘어갈 때 인생의 스파크를 느껴요. 마치 내 인생에 자극을 주는 것 같은…, 한잔 드실래요?”

2003년 이후 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태그 호이어’의 대표이사(CEO) 장 크리스토퍼 바빈(48) 씨. “왼쪽 손목에는 신상품인 ‘그랜드 카레라 칼리버 17 로즈골드’고 오른쪽에는 티타늄으로 만든 그랜드카레라 시계….” 탄산수를 따르는 순간에도 양 팔목에 찬 시계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올해로 8년째 태그 호이어를 이끌고 있는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방한 목적을 물어보자 한국 시장조사를 위해서 또는 신제품 공개를 위해 들렀다는 형식치레 대신 “한국 시장이 너무나 중요해 자주 들러야 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태그 호이어 브랜드에 있어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규모가 큰 시장이자 시계 시장으로서 가장 잠재력이 있는 나라 중 한 곳이다.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해 보였다. 꼿꼿한 CEO의 이미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와서 사람들 손목만 보고 다녔는데 태그 호이어 시계 찬 사람들 손목만 눈에 들어왔다”며 웃는 모습에선 발에 땀나도록 뛰어 다니는 영업사원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시계회사 CEO인 만큼 시간관념은 철저하겠죠?

“아니에요. 나도 사람이라 솔직히 약속시간에 종종 늦는 편이에요. 그래서 1만분의 1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정확한 시계(현재 ‘콘셉트’용으로만 있고 상용화되지 않음)를 만들고 싶어요. 내게 시간이란 정확히 지켜야 하는 존재라 생각하고 싶고 그래야만 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슬픈 기억들을 잊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감성적이죠?”

―하지만 당신이 만드는 태그 호이어 시계는 지극히 차갑고 남성적이지 않나요?

“나는 강한 정신력이 담긴 시계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기술적인 면을 강조하는 거랍니다. 타이거 우즈나 마리야 샤라포바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는 운동선수들을 광고모델로 기용했죠. 우리 고객의 70%가 남성이기도 하고. 아마도 150여 년의 우리 전통인 것 같아요.”

―다른 브랜드들은 디자인을 강조한 시계를 경쟁적으로 내놓다시피 하죠. 그들 대부분은 여성적이고 섬세한 이미지를 중시하지 않나요?

“물론 디자인에 중점을 두기도 하고 여성용 시계도 만들어요. 시계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니까요. 하지만 자동차를 예로 들자면 멋진 디자인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엔진과 기술력 아닐까요?”

1860년 에드워드 호이어에 의해 세워진 태그 호이어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스포츠 시계 브랜드로 명성을 쌓아왔다. 100분의 1초까지 측정 가능한 ‘마이크로 그래프’나 1000분의 1초까지 측정하는 ‘마이크로 타이머’, 시간당 36만 번 진동하는 ‘칼리버 360’ 등은 대표적인 히트상품이다.

특히 2003년 공개된 ‘모나코 69’는 아날로그시계와 디지털시계를 동시에 양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성성을 강조한 만큼 자동차 브랜드와의 합작품도 많았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포츠카인 SLR 모델을 기리는 뜻에서 SLR 시계를 만들었다. 4월에는 ‘페라리 엔초’를 디자인한 일본의 자동차 디자이너 오쿠야마 겐의 ‘K.O7’ 내부 대시보드에 ‘그랜드카레라’ 시계를 갖춰 화제를 모았다.

1999년에 태그 호이어는 ‘루이비통’으로 잘 알려진 패션그룹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에 편입되며 새 국면을 맞았다. 이에 대해 그는 “명품 패션회사 특유의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시계에 첨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7년 한국에 진출한 후 올해로 11년째인데 그간 한국시장에서 펼친 마케팅 핵심은 무엇입니까.

“유통 구조죠. 유럽에서는 로드숍(길거리 매장) 위주인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대부분 백화점에서 판매가 이루어져요. 디자인면에서는 유럽인에 비해 한국인 손목이 얇아서 다이아몬드나 액세서리 사이즈를 줄이는 등 신체적인 면을 고려했죠. 하지만 아시아 시장 수준이 높아져 지금은 전 세계 보편적인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보편적인 것만 추구해서 될 일은 아니죠. 명품 시계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신념’을 주는 시계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시계라도 첫 월급을 받은 사회 초년생이 산 것과 백만장자가 구입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죠. 사람들에게 애착심을 갖게 하는 시계야 말로 명품 아닐까요? 나는 그것을 기술력과 혁신으로 사람들에게 채워주고 싶어요. 1만분의 1초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그래서 그 짧은 시간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는 갑자기 쓰고 있던 빨간 안경을 내밀었다. ‘태그 호이어’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이 제품은 6년 전부터 그가 시작한 안경 브랜드 제품이다. 여기에 내년에는 ‘H2’라는 휴대전화기도 공개한다. 그에게 지금 가장 힘든 점은 뭘까.

“완벽을 추구하고 싶은데… 결코 도달할 수 없죠. 하지만 완벽을 향해 나아가면 언젠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래서 1만분의 1초도 측정하는 손목시계를 언젠가 내놓을 겁니다. 약속 시간에 종종 늦는 나를 위해서라도….”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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