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절어 얼굴이 번들거리는 여학생이 웃는다. 다른 여학생은 발가락 사이에 생긴 물집을 뜯어내고 있다. “어젯밤에는 수도꼭지 하나에 모여 15분 동안 30명이 씻었어요”라며 한 남학생이 해죽 웃는다.
뙤약볕 아래 보름 넘게 이어진 강행군. 물집이 터지고 한낮 폭염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이제 그냥 집에 가라”는 조교의 한마디에 절룩거리며 걷던 여학생은 눈을 크게 뜬다. 어느새 고생의 끝을 봐야겠다는 게 목표가 돼 버렸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2008 대한민국 희망원정대(주최: LIG손해보험, LIG건영, 서울시, 후원: 동아일보 노스페이스).
1일 전남 해남 땅끝에서 출발한 원정대가 막바지 힘을 내고 있다. 17일 충북 충주시에서 만난 원정대는 23일로 예정된 서울 입성이 코앞에 다가오자 상기된 표정이었다. 640여 km의 국토 종단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올해로 5번째를 맞는 이번 원정대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날씨와 싸우고 있다. 원정 초기 사흘간 폭우가 내리더니 이어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126명이었던 대원은 109명으로 줄었다.
박 대장은 “예년에 2, 3명의 탈락자가 생겼던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이번 원정길이 힘들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끈끈한 동료애가 생겼지만 가족 얘기가 나오자 마음이 울컥하는 모양이다. 권태호(23·계명대) 대원은 “어제가 누나 생일이었는데 걸으면서 누나 생각만 나더라”고 말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궁금하다. 보름 넘게 신문과 방송,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금지됐기 때문.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을 얘기해 주니 대원들은 “정말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날 오후 4시간 동안 14km를 대원들과 함께 걸었다. 30분 만에 속옷까지 흠뻑 젖는다. 그러나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대원들의 종아리엔 없던 힘이 솟아나는 듯했다. 윤민희(22·목포해양대) 대원은 “한계에 다다랐을 때 부모님이 생각난다. 꼭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충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