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포정치의 주역은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였다. 그는 검소하고 단정하며 돈과 쾌락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엄격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도 극단적인 엄격함을 요구했다.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시민들이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1794년 로베스피에르는 조르주 당통 등 당내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1인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공포정치 아래에선 누구든지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1794년 7월부터 국민공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로베스피에르 반대 움직임이 시작됐다.
7월 26일 로베스피에르가 공회에서 “반혁명파를 숙청하겠다”고 말하자 의원들은 “반혁명파가 과연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익명의 공포감을 이용해 상대를 압박하려는 전략이었다.
의원들은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음 날을 디데이로 정했다.
1794년 7월 27일. 이날은 당시 혁명정부가 정한 월력으로 따져 테르미도르(‘뜨거운 열의 달’이란 뜻)에 해당한다. 로베스피에르가 국민공회에 나와 연설을 하려 하자 의원들은 일제히 “독재 타도”를 외쳤다. 곧바로 로베스피에르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그를 체포했다. 국민공회는 다음 날인 7월 28일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로 보냈다. 반대파를 처형하는 데 그토록 즐겨 사용하던 단두대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로베스피에르.
훗날 역사학자들은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테르미도르의 반동(反動)’이라고 불렀다. 공포정치를 종식시킨 것은 좋았지만 그 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되돌아감으로써 진정한 혁명의 의미가 퇴색했기 때문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