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륙법과 영미법 등 세계 양대 법체계를 절묘하게 조화해 발전시켜 온 한국 법은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ICC 설립을 위한 로마조약이 1998년 7월 17일 성안되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ICC 역할과 주요 활동을 소개한다면….
"초창기에는 주요 강대국의 반대와 일부 회의적 시선 때문에 ICC가 존속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제는 국제사회의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해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국제 사법기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재판관으로 활동하면서 고충과 보람이 있다면….
"ICC 직원 700여 명의 중 한국인은 불과 4명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매사에 언행을 신중하게 하고, 작성해 선고한 판결문이 그대로 국제법이 되므로 과연 옳은 결정을 했는지 잠 못 이루는 날도 적지 않다. 피해자의 형사절차 참가 요건 등에 대해 내린 판결이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
―최근 야당 의원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북한이 저지른 모든 반인륜적인 행위와 함께 금강산 사건을 ICC에 고소, 고발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고소, 고발하는 서류를 접수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하더라도 북한은 ICC 회원국이 아니므로 금강산 사건이나 그 외의 행위에 대해 ICC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는 별개로 고려할 문제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ICC 재판관 중에서 '정보기술(IT)' 전문가로 꼽힌다는데….
"ICC 재판관이 된 뒤 첫 전원재판관 회의 때 노트북 컴퓨터 갖고 가서 메모했더니 다른 재판관이 놀라더라. 그 덕분인지 재판소의 IT 업무를 맡게 됐다. 재판소에서 지급해 주는 전자제품 대신 삼성 LG 등 제품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최근 일본인 재판관이 선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ICC 내 아시아 재판관의 활약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재판관 몫은 당초 3명이었다가 2006년 2명으로 제한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 뒤 일본이 ICC에 가입하면서 지난해 10월 보궐선거에서 재판관을 배출했다."
―ICC의 활동과 아프리카의 자원 확보 사이에서 충돌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전쟁과 집단 학살은 과거에는 주로 종교적, 인종적 갈등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 석유 등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국익이란 종종 집권 독재자의 개인적인 이득과 축재를 의미할 뿐이다. 한국이 자원 확보의 명분으로 이런 나라와 거래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것이 '피 묻은 자원'이 아니기를 바란다."
―캐나다 출신 재판관이 두 차례 소장을 연임해 내년 3월 11일 ICC의 소장 투표에서는 다른 대륙 출신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도전해 볼 생각이 있나.
"이 문제는 고도의 경험과 식견을 갖춘 다른 동료 열일곱 분의 판단에 달려 있다."(소장은 재판관 18명이 모여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비밀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새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민 참여 재판제도와 공판중심주의 등이 시행된 지 6개월이 넘었다.
"국민 참여 재판제도나 공판중심주의 등은 영미 국가, 특히 미국의 재판방식이고 원칙이다. 이곳에 와서 관찰한 결과 다른 선진국들의 법제도 개혁의 노력도 대체로 한국과 비슷하게 미국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ICC도 배심 재판제도만 없을 뿐 철저한 당사자 대립주의 및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운영된다."
―법률 시장 개방을 앞두고 있는데….
"한국법은 대륙법과 영미법 등 세계 양대 법체계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발전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민주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가는 과정에서 법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라는 방향에서 조명하면 외국의 관심도 커지고, 한국 법 강좌가 국제 마케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올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입학시험이 예정되어 있다.
"법학자와 법조 실무가 간에 로스쿨 정원 싸움으로 본질을 벗어나 걱정이 없지 않다. 제대로 된 로스쿨은 엄청난 투자를 수반하는 것이고, 이 자금은 새로운 교수의 훈련과 충원, 새로운 교과 과정 마련에 사용되어야 한다."
정리=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송상현 재판관 약력 ▼
△1941년 12월21일 서울 출생
△1959년 경기고 졸업
△1962년 제14회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1963년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서울대 법대 졸업
△1968년 미국 튤레인(Tulane)대 법학석사
△1970년 미국 코넬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법대 조교수
△1982년 서울법대 교수ㅁ
△1990년 국제거래법학회 회장, 민사판례연구회 회장
△1994년 뉴욕대 석좌교수
△1996년 서울법대 학장
△1999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2003년 3월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2005년 1월~2006년 12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
△2007년 4월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