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과학연구본부장의 연구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융합’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29일 ‘제3회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과학대상을 받은 유 본부장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KIST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본보 29일자 A24면 참조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 대상에 유영숙 씨
“1990년 KIST 도핑컨트롤센터에서 처음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죠. 운동선수의 몸에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금지약물이 있다면 찾아내야 했어요. 화학의 분석기술을 생물학에 활용했죠. 지금은 미량의 생체물질 100여 가지를 한 번에 측정할 수 있게 됐어요.”
이 기술은 요즘 생명과학계의 화두인 ‘시스템 생물학’의 기반이 된다. 시스템 생물학은 유전자와 단백질 등 생체물질의 활동을 연결해 생물체의 생명현상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이제야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유 본부장은 이미 국제학술지 ‘일렉트로포레시스’에 시스템 생물학 관련 리뷰 논문을 두 번 발표했다. 보통 이런 논문은 학술지 편집진이 해당 분야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권위자에게 요청한다.
요즘 유 본부장은 새로운 융합을 시작하고 있다.
“바로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입니다.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영어단어를 합한 신조어예요. 형광물질로 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여기에 약물을 붙여 동시에 치료도 하는 거죠. 장차 개인별 맞춤의학 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이 될 겁니다.”
유 본부장의 첫인상은 참 여성스럽다. 7남매 중 막내답게 집안에서는 애교도 많다. 그런 그가 KIST 설립 40여 년 만에 첫 여성 센터장을 거쳐 첫 여성 본부장이 됐다.
“2004년 센터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처음엔 사양했어요. 솔직히 두려움이 앞섰죠.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어요. 여자 후배들에게 리더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거든요.”
유 본부장은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실험과 육아를 병행하다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악몽도 여러 번 꿨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가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리더가 됐다. 아이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 연구원에게 ‘연구실을 지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을 대신 키워주신 어머니 덕분에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라며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여성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면 그만큼 과학의 발전도 더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도 사실 유 본부장 못지않은 열정을 보여줬던 한 여성에게서 비롯됐다. 태평양그룹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의 어머니 윤독정(사진) 여사다.
윤 여사는 1932년부터 독자적인 기술로 동백기름을 정제해 만들고, 동백꽃잎을 이용한 연료와 매염제(媒染劑)까지 생산한 실험정신의 소유자였다. 그의 열정적인 활동을 기려 여성 과학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다는 것이 아모레퍼시픽 측의 설명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유영숙 본부장은
1955년 5월 강원 원주 출생
1977년 2월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1986년 9월 미국 오리건주립대 생화학 박사 취득
1986년 10월∼1989년 2월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1990년 4월∼ 1997년 7월 KIST 도핑컨트롤센터 선임 및 책임연구원
1997년 8월∼ KIST 생체대사연구센터 책임연구원
1998년 3월∼ 고려대 객원교수
2000년 1월∼ 과학기술부 뇌연구촉진심의회 심의위원
2001년 8월∼ 한국기술벤처재단 전문위원
2006년 1월∼2007년 12월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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