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화합을 노래하는 래퍼가수 카비르 센(31)은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아들로서 느끼는 부담감이 엿보인다.
아마르티아 센은 1933년 11월 3일 인도 벵골지역 산티니케탄대 캠퍼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교수, 어머니는 유명한 작가였다.
‘불멸(不滅)’이라는 뜻의 힌두어 이름 아마르티아는 인도 중세문학 권위자인 센의 할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였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타고르가 지어 줬다.
18세 때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로 유학을 떠났고 이 대학에 재학 중이던 23세 때 인도 자다브푸르대의 교수로 선임됐다.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을 거쳐 지금은 하버드대에 적을 두고 있다.
10세 때 목격한 1943년의 ‘벵골 대기근’은 그의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쳤다. 300만 명이 목숨을 잃는 걸 지켜본 그는 평생 빈곤과 기아라는 주제에 천착했고, ‘후생(厚生)경제학’의 최고 대가로 자리를 굳혔다.
‘빈곤과 기아: 자격과 박탈에 관한 에세이’(1981년)는 그의 연구의 결정판. 이 논문에서 센은 기아가 발생한 많은 나라에서도 식량공급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 냈다. 공급 부족이 아니라 임금 감소, 실업 증가, 배급체계 미비 등이 기아를 불러왔다는 분석이었다.
이를 기초로 센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교육, 공중보건 개선 같은 사회개혁이 경제개혁에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 사회의 의사결정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 정의라는 요소를 함께 고려해 분배정의 실현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8년 스웨덴 노벨상위원회는 “센의 연구가 중요한 경제적 문제들에 관한 논의에서 ‘윤리적 차원’을 복원시켰다”고 평가하며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줬다. 합리성, 효율성만 강조하는 다른 경제학과 구별되는 그의 이론에 언론은 ‘따뜻한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센의 연구는 세계 식량위기를 해결하려는 국제단체들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아를 겪는 나라에 식량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공공사업 추진 등을 통해 빈곤층의 소득을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정치적 자유를 중시한 센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에서는 지도층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식량 부족 때문에 수시로 국제사회에 손을 벌리는 북한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