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女의 벽 넘어, 하늘을 날다”

  • 입력 2008년 11월 5일 03시 01분


국내 민간 항공기의 첫 여성 기장이 된 신수진(왼쪽), 홍수인 씨가 4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격납고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밝게 웃고 있다. 변영욱  기자
국내 민간 항공기의 첫 여성 기장이 된 신수진(왼쪽), 홍수인 씨가 4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격납고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밝게 웃고 있다. 변영욱 기자
민항 60년만의 첫 여성 기장 신수진-홍수인 씨

“여성의 섬세함, 첨단 기종 조종에 더 적합”

“어릴 때부터 하늘과 비행기에 대해 막연하게 동경해 왔습니다. 꿈은 이제부터 출발입니다. 기장이 되면 제복 웃옷에 줄이 하나 더 생기는데 늘어난 줄만큼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음을 느낍니다.”

항공기 기장의 꿈을 이룬 홍수인(36·여) 씨의 말이다.

그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고 1991년 항공대 항공통신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학교 측은 “앞으로 여성 조종사를 양성하는 과정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항공대는 여성에게 조종사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 근무하다 어릴 적 꿈을 포기할 수 없어 1996년 대한항공 조종 훈련생으로 들어갔다. 맥도널더글러스 MD-82와 장거리 항공기 보잉 B777의 부기장을 거치며 기장 예비훈련을 받았다.

국내 첫 여성 항공기 부기장 출신인 신수진(39·여) 씨의 과정도 쉽지 않았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처음에는 미국 항공사의 통역승무원으로 근무했다. 이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시에라비행학교에서 경비행기 조종면허증과 교관자격증을 땄다. 그는 1996년 대한항공에 조종 훈련생으로 입사하면서 민항기 조종간을 잡았다.

이듬해 소형 항공기인 맥도널더글러스 MD-82의 첫 여성 부기장이 됐고 2001년 10월 장거리 대형 여객기인 보잉 B747-400의 부기장으로 승진했다.

이들은 4일 국토해양부 항공안전본부로부터 보잉 B737 항공기 기장 자격을 나란히 얻었다. 민간 항공기가 국내에 도입된 지 60년 만의 첫 여성 기장이다. 보잉 B737 기종은 일본 중국 태국 등을 운항할 수 있는 중단거리 항공기.

항공기 기장은 운항 준비부터 착륙까지 승객의 안전을 모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비행 경력이 4000시간을 넘어야 하고 기장에게 조종간을 넘겨받아 항공기를 착륙시킨 횟수도 350회를 웃돌아야 한다. 중소형기의 부기장 경력도 5년 이상이어야 한다.

이들에겐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 주어졌다. 기장은 항공법상 비행 안전의 총책임자로 승무원의 지휘, 감독 권한과 기내 난동자를 감금하거나 관계 당국에 인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현재 국내 민간 항공사에는 기장 1731명, 부기장 1826명이 근무하고 있다. 여성 조종사는 두 사람을 포함해 대한항공에 4명, 아시아나항공에 4명이 전부다. 신 씨와 홍 씨를 뺀 나머지 6명은 모두 부기장이다.

기장의 연봉은 1억1000만 원 이상으로 건강에 문제가 없으면 만 60세까지 일할 수 있다. 두 신임 기장은 15일 보잉 B737 조종간을 잡고 기장 자격으로 첫 비행에 나선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초대형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과 보잉 B787의 기장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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