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소인국에선 보통 키의 남자랍니다”

  • 입력 2008년 11월 6일 02시 58분


소인국의 시장으로 출연하는 신강수(왼쪽에서 세 번째) 씨가 어린이들과 연습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소인국의 시장으로 출연하는 신강수(왼쪽에서 세 번째) 씨가 어린이들과 연습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132cm 신강수씨 ‘오즈의 마법사’ 출연

“키 작아 배역에 한계… 포기 안해요”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는 23명의 ‘먼치킨’이 모여 있었다.

12월 17일부터 공연되는 서울시뮤지컬단의 작품 ‘오즈의 마법사’에 출연하는 소인국 ‘먼치킨 랜드’의 주민들이다. ‘신장 140cm 이하, 춤 노래 연기 심사’라는 오디션 조건을 통과한 이들은 7∼10세의 어린이다.

이 중 신강수(27) 씨는 유일한 성인 먼치킨이다. 키가 132cm인 그는 소인국의 시장 역을 맡았다. 이날 연습은 먼치킨 랜드에 온 주인공 도로시를 맞이하는 장면. “오른쪽 봤다가, 왼쪽 봤다가, 돌고. 얘들아, 오른쪽이 어디니? 손들어 봐! 헷갈리면 안돼, 손 든 쪽이 먼저야!”

오재익 안무감독이 여러 차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져서요.”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이 웃으며 설명했다.

똑같은 얘기에 지루해질 법도 하지만 신 씨의 표정은 시종 진지했다. 그는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데도 지치지 않았고 어린이 동료들이 움직임과 동선 같은 것을 물어볼 때마다 꼼꼼하게 답해줬다.

“나이는 다르지만 역할은 같잖아요. 혼자 잘한다고 무대가 빛나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연습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이다.

배우가 꿈인 신 씨가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왜소증인 그는 어렸을 때 낯을 무척 가렸다. 남들과 다른 막내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부모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 불편했던 신 씨는 방과 후 방에 틀어박혔다. ‘유머 1번지’ 같은 TV 코미디를 즐겨 보던 그가 소풍 간 날 장기자랑을 하라기에 TV에서 본 개그맨 흉내를 냈더니 반 친구들이 환호했다.

그는 “그날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들이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랐던 부모의 뜻에 따라 그는 조선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어릴 적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결국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봐서 예원예술대에 들어갔고 2월 졸업했다.

“내 인생이니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작은 배역이라도 맡기 위해 대학로 극단들을 찾아다니면서 꿈을 키우고 있다. 방송사 개그맨 공채시험도 꾸준히 본다. 신체조건 때문에 배역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지만 비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빨간 피터의 고백’의 추송웅처럼 사람들을 웃기면서 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요즘 희곡 습작을 하느라 새벽녘에 자는데 늦게 일어나 연습 시간에 맞춰 가는 게 큰일”이라면서 웃었다.

어렸을 적 본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빨간 구두를 부딪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신 씨. 어머니 구두를 몰래 신고 따라해 본 기억이 난다면서 “꿈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된 ‘오즈의 마법사’ 출연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2월 17∼28일, 3만∼5만 원. 02-399-1114∼6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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