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해양법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독도 전문가인 박춘호(사진)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이 12일 오전 8시경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올해 초 혈액암이 발병해 항암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1930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한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정치학과) 재학 시절 한일 간 어업분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미개척 분야였던 해양법과 인연을 맺었다.
1972∼80년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법률연구소 연구원 시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해양 분쟁 및 대륙붕 해저자원 등의 연구’로 국제 해양법 분야의 독보적 학자로 인정받았다. ‘중국의 석유무기’ ‘분쟁 해역의 석유: 동북아의 해저분쟁’ 등의 논문은 학계에선 고전으로 통한다.
20여 년 동안 유엔 해양법회의에 참석한 것만도 40여 회. 국가 간 해양 관련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된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 출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1996년 임기 9년의 국제해양법재판소 초대 재판관에 당선됐고, ‘유엔 고위직 첫 진출 한국인’이란 기록도 세웠다. 2005년엔 재판관에 재선됐다. 이에 앞서 1997년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법단체인 ‘국제법학회(Institut de Droit International)’ 회원으로 등재됐다.
특히 고인은 독도 문제에 대해 냉정하고 전략적인 대응을 주문해 온 독도 전문가였다.
일본 중등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미국 지명위원회의 독도 영유권 표기 변경 논란으로 어수선하던 무렵 본보 시론(8월 17일자)에서 그는 “독도 문제는 단순한 역사적, 국제법적 사안이 아니다. 40년 전, 30년 전 일본의 주장이 동해의 어업자원과 도서영유권의 점유를 목적으로 했다면 20년 전, 10년 전 일본의 주장은 유엔 해양법의 질서에 편승한 해양 정책의 견고화 및 독도 주변의 잠재적 자원 확보가 목적”이라고 환기했다.
고인은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당시 정부 자문역으로 해양정책 입안에 기여했고 고려대 교수 및 석좌교수, 건국대 석좌교수를 지내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李대통령 유족에 조전
이명박 대통령은 유족에게 조전(弔電)을 보내 “세계 법학계의 저명한 석학이자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봉직해 온 고인의 타계에 애도를 표한다”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국제법학계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정부는 국민과 함께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한평생 해양법 분야에 남기신 고인의 고귀한 업적을 높이 기린다”고 밝혔다. 정부는 고인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유족으로는 김필례 여사와 장녀 지원(미국 거주), 차녀 경원(주한 영국대사관 근무) 씨, 사위 임기호(미국 IBM 근무), 최정환(인베스트인포 대표) 씨가 있다. 발인은 16일 오전 7시 반,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02-3410-6915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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